분노는 나의 힘
오래전에 썼다가 중단한 바 있는 조울증에 대한 글을 다시 이어서 올리고자 합니다.
직장생활의 힘듦은 스트레스에 대한 취약성에서 비롯한 것 같다. 어느 책에서 본 바에 의하면 정신질환자는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 해 스트레스 대항력이 30% 수준으로 떨어진다고 한다. 깨지기 쉬운 유리같이 마음이 늘 요동치기 일쑤였던 나는 수시로 많은 상담을 받았고 실제로 많은 도움을 받았다.
거주를 옮기게 되면 으레 그 지역에서 사회복지사 와의 주기적 상담을 했다. 사례연구의 케이스에 오픈되는 것을 조건으로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로부터 지속적인 상담을 받기는 어려웠다.
내 편에서 다급하게 필요했던 상담이 일단 일단락 되면 더는 상담의 필요성을 못 느껴 중단하는 경우 도 있고 또는 사회복지사의 잦은 교체로 인해 상담 의 연속성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사회복지사 가 처한 열악한 환경을 인식하고 또한 그들에 대한 존경심을 같이 느끼는 순간이기도 했다.
직장 현안의 당면문제부터 낮은 자존감과 자신감 그리고 열패감에 대해 그들은 최선을 다해 상담을 하고 나의 문제에 대해 조언을 해주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한 사람이 있다. 30대의 여성 분인데 진 심을 다하여 나의 마음의 고충을 이해하려고 했다. 어떤 대안을 제시하는 일이 아니더라도 내가 지금 힘들다는 상황을 깊이 있게 공감하는 그런 수용적 인 태도가 정말 좋았다.
정신과 의사들의 책도 질병을 이해하고 살아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특히 양창순 님이 쓴 [당신 참 괜찮은 사람이야]에서는 자존감이 위축된 내게 당신은 괜찮은 사람이라고,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 고 말해주는 것 같아 고마웠고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에서는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하고 인생이라는 전투에서 이기려면 마음을 강하게 할 필요가 있다. 까칠한 사람이라고 선언 하라, 자존감의 구축이 가장 올바른 시작점인이다" 라는 말이 와닿았다.
상담의 과정에서 전혀 예기치 못한 중대한 각성이
일어나기도 한다. 직장 내 어떤 업무가 타인과의 협조가 안되어 애가 타던 때였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사적이었던 나는 매주 한번 찾아오는 상담 일을 기다려 고민을 속사포같이 털어놓았다. 그때 상담자는 나의 업무적 고민보다는 그날따라 유난히 내가 지금 먹고 있는 약을 끊어야 한다는 이야기만 계속했다. 막상 내가 필요한 이야기는 그게 아닌데 다가 내가 한 인간으로서 생존을 위해 필사적으 로 헤엄치고 있다는 것을 전적으로 무시당한 느낌이 들며 일종의 거대한 분노가 전율하듯이 지나갔 다.
그때 나는 상담자에게 내가 정신병에 걸린 타인과 완전히 이질적인 존재이거나 괴물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간이라는 말을 거센 고함과 설과 함께 터뜨리면서 예기치 못한 어느 한 정점에서 느낀 분노의 힘이 너무나 무시무시하게 터져 나오는 것 을 느꼈다. 동시에 내 삶을 옥죄어 왔던 모든 감정은 두려움과 공포였고 어쩌면 잠시나마 느낀 분노의 감정이 이를 이겨냈다는 것을, 그래서 어쩌 면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도 있겠다는 깨달음을 주었다. 그것은 매우 고맙고도 고마운 경험이었다.
나의 존엄성을 자각하고 오해와 편견을 보여주는 사람들에게 분노하는 것 이것은 나에게 전적으로 필요했던 일이었고 매우 특별하고 소중했다. 또한 상당히 유능하고 노련한 상담사라고 생각했던 그로부터 받은 일종의 역습은 이 질병이 주는 사회 적 낙인감의 깊이를 다시 한번 알게 해 주었다. 그 후부터는 한동안 상담하는 행위를 중단했다.정신 적으로 한 단계 성장하는 큰 사건이자 중대한 각성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