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은 한국에서 시한부 종말론의 쓰나미가 크게 휩쓸고 지나간 한 해이기도 하다. 10월 28일 에 예수의 재림이 있을 것이니 다가올 미래를 준비 하라고 외친 다미선교회와 그의 추종자들이 몰고 온 시한부 종말론은 한국의 매스컴을 떠들썩 하게 장식하며 이른바 휴거 불발 사건으로끝나면서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했다.
나 자신에게도 말세에 대한 두려움과 입시에 대한 스트레스가 겹쳐 결국 정신질환이라는 충격을 안겨 줌으로써, 향후 알 수 없는 삶의 소용돌이를 맞게 했다.
시한부 종말론의 시작점을 알리는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라]는 책이 1987년 출간되었고 그 직전 연도에는 어네스트 앵글리가 쓴, 기독교종말론에 바탕을 둔 일종의 공상미래소설인 휴거라는 책이 국내에 번역되었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나에게 이 두 권의 책은 최후 의 심판에 대한 무시무시한 두려움을 갖게 하였고, 혹여라도 들림 받지 못하면 이 땅에서 처참한 순교 를 감당해야 한다는 생각이 마음을 얼어붙게 했다.
당시 페르시아만을 둘러싸고 이라크와 쿠웨이트 간의 전쟁에 미군이 개입한 걸프전이 미국 CNN
방송을 통해 생중계되고, 이천 년으로 넘어가면 컴퓨터가 인지를 못하게 되는 밀레니엄버그가 일어날 거라는 이야기가 말세론의 근거로 떠돌았고
특히 노스트라다무스 연구가인 일본의 고도이 벤은
자국의 공영방송에서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을
소개하고 열렬히 지지하기도 했다. 또한 기독교의 7년 대환란설과 1999 넌 종말이 그럴듯하게 궤를 같이 하면서 시한부 종말론은 그 나름대로의 신빙 성이 있어 보였다.
고3초기 서울대를 안정적으로 갈 수 있었던 성적이 세상의 종말에 꽂힘과 동시에 추락했고 급기야는 어느 순간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고 몇 날 며칠을 공부하다가 어느 무더운 여름날 등교하는 길에 섬망 증세를 일으키고 병원에 곧바로 입원을 했다.
1988년 여름에 급성정신분열증이라는 병명과
함께 보낸 폐쇄병원에서의 한두 달의 병원살이를
하고 나니, 부모님은 지나치게 많은 공부를 하다가
병을 얻은 것이니 지방국립대를 추천하여 결국
반수 또는 재수에 대한 어떤 명확한 입장을 정하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다니다 보니 재수의 기회도
놓치고 말았다. 지나고 나면 통한의 젊은 시절이 기도 했다. 수많은 시간이 흘러서야 이십대의 어긋난 삶에 대해서 온전히 수용하고 감수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