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울증의 처방약이 하는 기능은 지나치게 가라앉는 기분을 붙들어주면서 동시에 지나치게 기분이 뜨는 것을 막아주는 절묘한 균형 잡기와 비슷하다. 그러나 때로는 술을 마셔서 약성분이 희석되거나 한 경우도 있고 마음이 설레는 어떤 일이 있거나, 또는 아무 이유도 없이 예측할 수 없는 상태로 조증 상태가 찾아와서 그야말로 역동적인 하루가 되기도 한다.
어떤 날은 주말에 야근을 하기 위해 출근하려고 전철을 타고 해야 할 일을 고심하며 가는 도중에 마음이 들떠서 조증이 찾아온 것을 느끼고 도무지 일을 할 수 없다는 판단에 중간에 내려서 다시 집에 돌아간 적도 있었다. 조증인 상태에서는 지적인 작업이 제한되고 스트레스에 극도의 약함을 보여서 뭔가 신경을 쓸만한 일을 하기가 힘들다. 감정은 필요 이상으로 즐거워져서 타인이 보기에도 불안정 하게 보여 일종의 감정조절이 필요하지만 의지대로 되지는 않는다.
어느 하루, 정말 친한 친구에게 같이 만나자고 전화 가 왔다. 전날 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잔 데다가 아침 에 기분이 들뜬 기운이 남아 있는 것을 감지하고 불안한 듯 내내 마음이 떠돌았다. 직감적으로 밖에 나가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았으나 내심 스스 로 통제할 수 있겠지 믿고 친구를 만나보고 싶은 마음에 밖으로 나가 택시를 탔다. 기분이 뜨는 날에 는 특히 전철을 탈 경우 내리거나 환승할 때를 놓치 는 경우가 허다해서 택시를 타고 약속장소에 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다 왔다는 택시 기사의 말을 듣고 내렸지만 갑자기 지금 어디에 있고 어디로 이동해야 하는지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갑자기 사방이 어두침침해지 고 여기저기 건물의 모서리에서 도깨비들이 튀어나 오는 것 같았다. 주머니를 뒤져보니 가지고 왔다고 생각한 핸드폰도 없었다. 집에 두고 온 것이었다.
낭패감과 두려움 속에 근처 건물의 롯데리아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뭐라도 주문해야 앉아있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주문하는 줄에 서 있으려니 아르바 이트 생이 주문하라고 하는데 메뉴이름이 생각이 나지 않아서 앞사람 주문한 대로 달라고 하였다. 새가 날개를 펴듯, 온 마음이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것 같은 기운을 느꼈다. 들뜬 기분이 점점 마음을 위협했다.
누군가에게 핸드폰을 빌려 친구에게 전화해서 통화 시도를 하고 현재 위치를 알려주려 했으나, 친구의 전화번호를 알 수가 없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핸드 폰 한 통화만 쓸 떼니 빌려달라고 하자 돌아온 대답 은 요새는 이런 장난 안 통해요였다.
순간 분노가 치밀면서 마음이 위로 올라오더니 해안가를 집어삼키기 전 바닷물이 섬뜩하게 뒤로 물러나는 것처럼 마음이 긴장되고 두려움이 밀려 왔다. 결국에는 어느 중학생 소녀들에게 사정설명 을 해서 가까스로 아내와 통화가 되었다. 아내는 일하다 말고 갑작스레 연락을 받고 와서는 눈물이 가득한 채 나를 마주하고 울었다. 집에 들어와서 다시 약을 먹고 나서 깊은 잠을 자고 나니 비로소 마음이 안정되었다.
어쨌든 약의 안정된 통제를 받을 때는 자신이 환자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타인에게도 감쪽같이 숨길 수 있는 병이지만, 어쩌다가 이러한 조증 상태를 경험하고 나면 스스로가 환자라는 것에 대한 돌이 킬 수 없는 현실 인식을 얻게 된다. 그것은 나의 자신감과 자존감을 많이 위협하고 세상과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게 했다. 삶의
커다란 숙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