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

Claudio Monteverdi 1567-1643

by 이정현

16세기에 베네치아를 대표하는 이탈리안 작곡가, 몬테베르디는 밀라노의 크레모나에서 1567년 5월 15일에 세례를 받은 기록이 가장 첫 기록이고, 베네치아에서 1643년 11월 29일에 타계했습니다. 당시에 새로운 장르로 피렌체에서 생겨난 오페라를 베네치아 스타일로 발전시킨 장본인으로서, 몬테베르디는 역사적으로 르네상스시기에서는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이발사이자 외과의사, 그리고 화학자였고, 크레모나 성당의 음악감독이었던 마르칸토니오 인제녜리 (Marcantonio Ingegneri 1535/36-1592)에게 음악을 배웠습니다. 몬테베르디는 1587년에서 1590년 사이에 당시 유명했던 베네치아 인쇄소에서 두 권의 마드리갈 책을 출판할 정도로 교회음악에서는 아주 두각을 나타내는 어린 작곡자였습니다. 자신의 선생이었던 인제녜리의 작곡기법은 물론이고, 당시 유명 마드리갈 작곡자였던, 루카 마렌지오 (Luca Marenzio 1553/54-1599)를 비롯한 수많은 이탈리안 종교음악의 작곡가들의 곡에서 볼 수 있었던 색채들 또한 느낄 수 있었던 작품들이었습니다.

Claudio Monteverdi_c.1597 Artist unknown


1. 곤자가 궁정

정확히 몬테베르디가 언제 고향을 떠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1590년 즈음에 그는 현악기 연주자로서 만투아 공작의 빈첸조 곤자가 궁정에서 일했습니다. 그의 음악은 후기 르네상스의 플레미쉬 악파였던 Giaches de Wert (also Jacques de Wert 1535-1596)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연구되었습니다. 가사가 자연스럽게 전달력이 있으며, 음악이 가사의 분위기에 맞게 적절하게 매치되는 작곡법은 베르트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죠. 만투아에서 출판한 첫 번째 마드리갈 책을 보면, 그의 멜로디 선율은 leap이 많은 것이 특징이고, 화성 또한 불협화음을 많이 쓰면서, 긴장감을 주는 음악이 특징적입니다.

1599년 즈음, 몬테베르디는 가수였던 Caludia Cattaneo와 결혼을 했고, 1602년, 그의 나이 35세 때 곤자가 궁정의 음악감독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1603년과 1605년에 작품집을 출판했고, 그의 명곡들이 이 두 작품집 안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가 새로운 시도를 음악에서 보여줬지만, 그는 진심으로 옛 양식을 존중했고, 죠스캥 데프레와 죠반니 팔레스트리나가 보여주었던 순수한 폴리포니 형식의 전통을 그대로 자신의 교회음악에서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오페라와 세속음악 장르에서 보여주는 그의 새로운 작곡기법들은 19세기까지 전해졌습니다.


2. 몬테베르디의 오페라

북 이탈리아에서 몬테베르디는 마드리갈로 명성을 얻고 있을 때, 1607년 그의 첫 번째 오페라 오르페오 (Orfeo)가 초연되었습니다. 몬테베르디는 오페라 오르페오에서 이전에 보여주지 않았던 화려하고 드라마틱한 요소들을 보여주었습니다. 그가 쓴 레치타티보는 다른 작곡가들에 비해 좀 더 표현적이고 유연했으며, 극의 전개 또한 극적이고, 음악과 내용이 결합된 형태로 작은 디테일들이 모여 하나의 이야기로 전개되도록 만들었습니다. 특히나, 극의 클라이맥스에서는 불협화음과 함께 긴장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면서, 성악가의 화려한 테크닉과 악기들과의 조화로움을 통해 감정을 한층 더 극대화시키는 효과를 보여주었습니다.

오르페오의 거대한 성공 후, 그는 아내를 잃는 고통을 겪어야만 했고, 그 뒤로 오랫동안 병에 시달렸습니다. 우울증에 지친 그는 고향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만투아 공작의 부름에 새로운 오페라를 작곡했고, 귀족들을 위한 발레 곡 또한 작곡했습니다. 1608년 그의 오페라 라리안나 (L'Arianna)는 대성공을 거두었지만, 총악보가 현재 남아있지 않은 상태입니다. 라리안나 중 'Lamento'라는 곡은 현재 아주 유명한 곡으로 다양한 연주형태로 연주되고 있습니다. 결국, 몬테베르디는 1608년, 대우가 좋지 못했던 곤자가 궁정을 떠나게 됩니다.


3. 몬테베르디의 교회음악

곤자가 궁정에서 나온 몬테베르디는 다시 교회음악을 쓰기 시작했고, 1610년에 옛 스타일로 작곡한 미사곡과 저녁기도를 포함한 종교음악집을 한 권 출판했습니다. 미사곡의 완성도는 굉장히 높았고, 사라져 가던 폴리포니 형식의 아름다움을 상기시켜 주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그의 저녁기도음악에는 스케일이 큰 시편 형식을 가지는 베네치안형식을 따르고, 성악가들의 기교를 요하며, 기도 중간에 기악음악을 포함시키는 오페라적인 요소들을 가지는 마니피캇 (Magnificat)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무반주의 성경구절을 노래했던 plainsong형식 또한 놓치지 않고 삽입시킴으로써, 옛 양식과 새 양식의 조화로움을 교회음악에서 보여주었습니다.


4. 30년 동안 베네치아 생활

@https://tmms.co.uk/the-father-of-opera-claudio-monteverdi-1567-1643/

베네치아 세인트 마크 성당의 음악감독이 죽고 나서, 몬테베르디가 1613년부터 그 직책을 맡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당시에 막중한 책임을 가지고 교회음악에 전념했습니다. Francesco Cavalli (1602-1676)와 Alessandro Grandi (1590-1630)를 조수로 두고 매일 미사를 위한 합창곡을 써냈습니다. 세인트 마크 성당뿐만 아니라 주변의 성당에서 하는 행사음악 또한 맡아 진행시키곤 했습니다. 만투아 공작과의 교류도 끊이지 않고 하며, 종종 오페라를 작곡하는 일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 시기에 나타난 몬테베르디의 작품적 특징은 등장인물들의 마음과 분위기의 변화들을 잘 나타낼 수 있는 요소들을 다양하게 적용시켜서 극을 드라마틱하게 전개했습니다. 예를 들면, 1619년에 그의 일곱 번째 마드리갈이 출판되었을 때, 작품집에서는 그의 다양한 음악적 요소들은 그 당시에 새로운 도구로 인물을 표현하는데 쓰였고, 동시대 작곡가들이 사용했던 "borrowing" (모방기법) 또한 함께 사용해서 가사와 음악의 매치를 신중하고 적절하게 사용함으로써 곡의 분위기를 증폭시켰습니다. 몬테베르디의 다양한 리듬과 화성의 사용 또한 높이 평가되고 있는데요, 그는 심지어 자연의 소리를 모방하는 사운드도 만들어 내어서 그 당시에 새로운 시도를 서슴지 않고 했던 작곡가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그의 칸타타 중 "The Combat of Tancredi and Clorinda (1624)에서 이 모습을 자세히 관찰해 보실 수 있습니다.


5. 몬테베르디의 말년

1631년 몬테베르디는 성 마크 성당의 추수감사절 미사를 위한 거대한 미사곡을 썼습니다. 그중에 'gloria'만 현존하고 있고, 가사에 따른 다양한 음악적 색채를 가미한 작곡법이 발견되었습니다. 예전보다 그의 열정은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장엄하고 고요한 미사곡들을 이 시기에 많이 작곡했습니다. 1681년에 그는 그의 마지막 마드리갈 모음곡집을 출판했고, 그의 음악이론이 담겨있는 책이었습니다.

Monteverdi's Madrigals Book 8. 1638

1637년 베네치아에서는 첫 번째 공공 오페라 극장이 세워졌습니다. 이미 베네치아에서 활동하면서 명성을 얻고 있던 몬테베르디는 오페라 작곡가 경력 또한 우수했기에 자연스레 이 극장과 인연을 맺게 됩니다. 그의 오페라 "L'Arianna"가 재상연되고 3년 동안 4개 이상의 새로운 오페라들을 상연하게 되죠. 그중에 현존하는 작품은 단 두 개뿐입니다: The Return of Ulysses to His Country (1639-1640) & The Coronation of Poppea (1643). 이 두 오페라는 르네상스의 인터메조와 목가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지만, 공식적으로 첫 번째 모던 오페라로 분류됩니다. 왜냐하면 사실적인 묘사와 다양한 캐릭터의 등장, 음악이 주는 감정변화의 움직임이 정확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오페라는 다양한 음악적 요소를 통해 핵심 이야기를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성공적인 오페라들을 통해 몬테베르디는 현재까지도 위대한 작곡가 중 한 사람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출처: https://www.britannic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