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Frideric Handel 1685-1759
독일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활동한 작곡가인 죠지 프리데릭 헨델 (게오르그 프리드리히 헨델)은 어느 나라 작곡가라고 해야 할까요? 기록에 따르면, 그는 1709년부터 영국을 드나들다가 1712년에 영국에 완전히 정착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그가 영국에서 보낸 시간이 더 길었고, 심지어 그는 영국인으로 귀화했기 때문에 영국사람들은 그를 영국 작곡가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독일 사람들은 그가 독일 할레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독일 작곡가라고 하죠. 바로크 음악사에 영향력 있는 작곡가 중 한 사람이기에 이에 대한 논쟁은 아직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 듯합니다.
1) 헨델의 생애와 작품활동
헨델은 1685년 2월 23일에 독일 할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독일의 여러 도시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와 영국으로도 여행을 다녔습니다. 여행하는 동안에 각 나라의 유명한 작곡가들을 만났고, 그들의 작품들을 접하게 되었죠. 이를 계기로, 그는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그리고 유럽의 각 나라의 음악적인 스타일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결국, 헨델은 생애동안 유럽 각국의 다양한 색채를 가지는 작품들을 완성했습니다.
작센지방의 바이센펠스 공작의 제안으로 헨델은 할레의 오르가니스트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차호우 (Friedrich Wilhelm Zachow 1633-1712)를 사사했습니다. 헨델은 1702년에 할레 대학에서 외과 의사였던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법대를 진학했고, 교회에서는 오르가니스트로 활동했습니다. 이 시기에 헨델은 당시 유명했던 이탈리안 작곡가, 아틸리오 아리오스티 (Attilio Ariosti 1666-1729)와 죠반니 보논치니 (Giovanni Bononcini 1670-1747)를 만났고, 일 년 뒤 함부르크로 떠났습니다.
1703년 헨델은 함부르크 오페라 하우스에서 바이올린과 하프시코드를 연주하는 연주자로 고용되었고, 그곳에서 작곡가이자 가수이자, 이론가였던 요한 메터슨 (Johann Mattheson 1681-1764)을 만났습니다. 1740년에 메터슨이 출판한 저서 <Grundlage einer Ehren-Pforte> 에는 헨델의 생애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많이 삽입되어 있다고 합니다. 헨델은 차호우와, 함부르크 오페라 하우스의 디렉터이자 작곡가였던 라인하르트 카이저 (Reinhard Keiser 1674-1739)의 영향을 받아, 특히 카이저의 음악을 많이 모방했습니다. 헨델 생애 동안, 그는 40여 편의 오페라를 작곡했는데요, 그의 첫 번째 오페라인 알미라 Almira (HWV 1, 1705)가 바로 함부르크에서 초연되었습니다.
헨델은 생애 동안 이탈리아를 여행했습니다. 그는 유명한 이탈리안 작곡가들, 예를 들면 아르칸젤로 코렐리 (Arcangelo Corelli 1653-1713)와 알레산드로 스카를라티 (Alessandro Scarlatti 1660-1725)를 만났습니다. 그들의 영향을 받은 헨델은, 1709년에 오페라 아그리피나 (Agrippina, HWV 6)를 작곡할 때, 스카를라티의 음악적 요소들을 사용했습니다. 1710년까지 헨델은 하노버극장에 음악감독으로 일을 했었는데, 영국의 음악시장이 궁금했던 헨델은 런던에서 종종 휴가를 보내곤 했습니다. 헨델이 1711년 런던에서 첫 번째로 상연한 오페라는 바로 리날도 (Rinaldo, HWV 7)입니다. 리날도가 성황리에 초연되었고, 그의 명성은 런던에서 높아졌습니다. 이를 계기로 1712년에 헨델은 런던으로 정착지를 옮겼고, 오페라와 종교음악작곡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었습니다.
본격적인 오페라 작곡가로서의 길은 첫 번째 로얄 아카데미 시기 (1720-1728)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헨델은 오페라의 성공을 위해 가수들을 직접 섭외했습니다. 카스트라토와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 가수들 중에는 헨델의 두 번째 로얄 아카데미 시기 (1729-1733)을 계속해서 함께 한 가수들도 있었습니다. 그는 첫 번째 로얄 아카데미 시기 동안 작곡한 대표적인 작품들은 Ottone (HWV 15, 1723) Giulio Cesare (HWV 17, 1724), 그리고 Rodelinda (HWV 19, 1725) 등이 있습니다.
헨델은 요한 하이데거와 파트너십을 결성하고 두 번째 로얄 아카데미 시기를 시작했습니다. 헨델은 새로운 오라토리오, 특히 영어로 된 오라토리오를 작곡했는데요, Deborah (HWV 51, 1733)와 Athalia (HWV 52, 1733)가 바로 이 시기에 작곡된 작품들입니다.
두 번째 로얄 아카데미 시기가 끝이 나고, 코벤트 가든에서 활동할 당시, 헨델은 프랑스 출신의 무용가인 마리 살레 (Marie Sallé 1709-1756)와 함께 작업하면서, 그의 오페라에도 발레음악과 무용수들이 출연하는 장면들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새로운 버전으로 재탄생한 오페라들인 Il pastor fido (HWV 8, revision 1734)와 Arianna (HWV 32, 1734) 그리고, 새로운 오페라 Ariodante (HWV 33, 1735)와 Alcina (HWV 34, 1735)이 대표적인 작품들입니다.
2) 헨델의 오페라
헨델은 오페라에 여러 각국의 다채로운 색채를 담고 있는 작품들을 남겼습니다. 그는 이탈리안 스타일의 아리아를 선호했고, 대위법과 오케스트라 편성은 독일 스타일로 작곡했습니다. 또한, 그는 서곡과 춤곡은 프랑스 스타일을 모방했습니다. 특히, 헨델의 오페라 올란도 Orlando (HWV 31, 1733) 서곡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오페라 올란도 서곡에는 붓점이 있는 리듬과 느리고, 빠르고, 느리게 진행되는 템포 패턴인 프랑스 스타일로 작곡되었습니다. 게다가, 그는 두 가지의 레치타티보 형식: simple recitative (only basso continuo 반주로만 되어진 말하듯이 진행하는 형식) 와 accompanied recitative (오케스트라 반주와 극적인 긴장감을 줄 때 사용한 형식) 을 적절하게 사용했고, 이를 발전시킨 작곡가입니다. 오페라에서 아리아들은 주로 장면의 분위기가 고조되는 순간을 성악가들이 뛰어난 테크닉을 통해 더욱 긴장감 넘치게 해주는 매개체로써, 대부분 다카포 형식으로 쓰여졌습니다. 다카포 형식은 ABA'형식으로 마지막 A' 부분은, 첫번째 A 부분을 바로크 장식음들을 삽입하여 멜로디를 꾸며줌으로써, 화려하게 아리아의 엔딩을 장식합니다. 장식음의 사용은 바로크시대에 널리 행해졌던 것으로 16세기부터 활발하게 악기 연주자들에 의해 시작 되었는데, 성악가들 또한 자신의 기교를 한껏 보여줄 수 있는 기회이자, 오페라에서 드라마틱한 장면을 더욱 극대화 시켜주는 형태로 사용되었습니다.
3) 헨델의 오라토리오
헨델은 오페라 뿐만 아니라 오라토리오도 유명한 작품들을 남겼습니다. 그 중 헨델이 로마에서 쓴 작품 중에 부활 La Resurrezione (HWV 47, 1708)은 그가 작곡한 유명한 오라토리오 중 하나입니다. 사실 헨델이 부활을 오페라로 작곡을 했었지만, 당시 교황 클레멘트 11세에 의해서 오페라가 금지된 시기였기 때문에, 이를 오라토리오 버전으로 바꾸어서 1708년에 상연한 것이 부활의 뒷 배경입니다. 이 작품은 1730년대에 들어와서 새로운 장르로 헨델이 영어 오라토리오로 창안했습니다. 이는 헨델의 첫번째 영어로 된 오라토리오로써, 오페라, 라틴 오라토리오, 독일 수난곡, 그리고 영국 앤텀의 요소들을 합쳐놓은 형태를 보여주었습니다.
주로 오라토리오의 가사는 구약성경에서 비롯된 것으로 무대에서의 연출을 위함보다는, 전문 콘서트 연주장에서의 연주를 위해 작곡되어진 것으로써, 다양한 아리아 형식들을 내포하고있고, 규모가 큰 코러스의 합창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1718년 헨델은 첫번째 영어로된 오라토리오 에스더 (Esther, HWV 50)을 작곡했는데요, 이 작품은 1732년 King's Theatre에서의 초연을 위해 수정되었습니다. 1741년에 작곡된 헨델의 메시아 (Messiah, HWV 56)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 중에 하나입니다. 메시아는 전통 클래식 음악의 혼합된 양식을 보여주는 아주 좋은 예입니다. 프랑스 스타일의 서곡, 이탈리아 스타일의 레치타티보와 다카포 아리아들, 독일의 합창 양식, 그리고 영국의 앤텀에서 사용된 코랄 스타일이 모두 혼합되어진 작품입니다.
4) 헨델의 기악작품
헨델은 기악 작품들도 많이 남겼는데, 그 중에 솔로 소타나, 트리오 소나타, 키보드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 그리고 콘체르토 등이 있습니다. 그의 콘체르토들은 그의 성악 음악곡들과 관련이 깊은데요, 특히 그의 오라토리오 작품의 막간에 헨델이 직접 자신이 작곡한 오르간 콘체르토들을 직접 연주하기도 했었고, 합주협주곡도 연주하곤 했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기악곡 중에 수상음악 (Water Music, HWV 348-350)은 1717년에 템즈강에서의 궁중 연회를 위해 작곡된 것입니다. 1749년에 초연한 왕궁의 불꽃놀이 음악 (Royal Fireworks, HWV 351)는 조지 2세의 요청에 의해 현악기를 없앤 관악기와 타악기만을 위한 곡이었는데요, 훗날 헨델이 현악기 파트를 다시 재 조성해서 연주를 했고, 현악기가 포함되어 작곡된 버전이 자주 연주되고 있습니다. 헨델의 콘체르토들 중에서 12개의 대 협주곡 (Twelve Grand Concertos Op. 6 HWV 329, 1739)는 헨델이 코렐리의 풀 오케스트라 버전의 소나타 컨셉을 바탕으로 작곡한 곡으로써, 느리게-빠르게-느리게-빠르게 패턴을 따르고 있습니다.
5) 헨델의 자서전과 악보집
헨델이 죽은 후, 존 메인워링 (John Mainwaring, 1735-1807)은 헨델의 첫번째 자서전을 1760년에 출판했습니다. 18세기 말에는 사무엘 아놀드 (Samuel Arnold, 1740-1802)가 첫번째로 헨델의 작품들을 출판하기위해 그의 전집을 만드는 것을 시도했습니다. 하이든은 헨델이 영국에서 오라토리오를 연주한 것을 보고 감명을 깊게 받았고, 베토벤은 헨델이 위대한 작곡가임이 분명하다며 아놀드가 제작한 헨델의 전집을 소유했었다고 합니다.
Hallische Händel-Ausgabe (HHA)는 학구적으로 중요한 헨델의 작품을 모두 수록한 에디션입니다. 1955년에 Bärenreiter 회사에 의해서 출판이되었고, 각각의 책에는 헨델의 작품이 출판된 순서대로 기록되어있고 이를 바탕으로 헨델작품번호인 Handel-Werke-Verzeichnis (HWV)가 붙여졌습니다. Terence Best와 Wolfgang Hirschmann가 주요 편집자들로 구성되어진 HHA는 Bernd Baselt가 정리한 시스템을 따르고 있고, 1858년과 1902년 사이에는 Friedrich Chrysander에 의해서 Händel-Gesellschaft (German Handel Society) 에디션이 편찬되었습니다.
20세기에 들어와서 헨델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었고, 21세기에는 역사학적으로 연구된 연주법들을 보여주는 성공적인 헨델 오페라와 오라토리오 작품들의 재현되고 있습니다. 헨델 학자로 유명한 사람들로는 Winton Dean, J. Merrill Knapp (Handel’s Operas 1704-1726 저자), Donald Burrows (The Cambridge Companion to Handel 저자)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