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두아르테 로보

Duarte Lôbe 1564-9 - 1646 or 1575-1646

by 이정현

두아르테 로보 (Duarte Lôbo)는 르네상스 후기와 초기 바로크시대의 과도기에 활동했던 작곡가로서 포르투갈 출신입니다. 로보는 원래 이름은 Eduardus Lupus인데 이 포르투갈 이름을 라틴어로 바꾼 이름을 쓰고 있습니다. 로보는 포르투갈 남쪽인 알렌테주 지방의 알카소바스 마을에서 1564년에서 1569년 사이에 태어났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고요, 혹은 경우에 따라 1575년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 다행히, 사망기록은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로보는 1646년 9월 24일에 리스본에서 타계했습니다.


어린 시절 로보는 자신이 태어 난 알렌테주 지방의 에보라라는 도시에서 르네상스 포르투갈 작곡가인 마누엘 멘데스 (Manuel Mendes 1547-1605)를 사사했고, 리스본을 이주하기 전까지 에보라 성당에서 성가대 지휘자를 역임했고, 리스본으로 이주하기 전까지 성당의 음악감독까지 역임했었습니다. 1594년 리스본으로 이주한 후에는 성당의 음악감독이 되었습니다.

Manuel Mendes signature

동시대의 필리페 드 마갈량이스, 마누엘 카르도주와 같이 당시 포르투갈에서 가장 유명한 작곡가 중 한 사람인 마누엘 멘데스 (1547-1605)를 사사했습니다. 포르투갈 왕 주앙 4세와 함께, 이들은 포르투갈 폴리포니의 ‘황금시기’를 보냈습니다. 로보는 알렌테주 지방의 에보라라는 도시에서 어린 시절 성가대를 했고 나중에 그의 선생님인 마누엘 멘데스를 만나 음악공부를 했던 곳도 바로 이 도시였습니다. 그의 첫 번째 직업은 아마도 1589년 즈음에 에보라 성당의 음악감독이었고, 리스본의 종합병원에 음악감독이 되었습니다. 1591년부터 1639년까지 그는 리스본 성당의 음악감독으로 일했습니다. 이것은 포르투갈에서 음악인으로서 엄청난 직책을 맡은 바나 다름없었습니다. 또한, 그는 리스본의 성 바르톨로메오 신학교에서 음악감독과 수도원에서 교수직을 역임했습니다. 그는 대표적으로 4권 이상의 전례용 음악을 출판했고, 포르투갈의 폴리포니 음악의 대표적인 작곡가중 한 사람입니다. 또한, 다양한 스타일의 리드미컬하고 활발한 호모포니를 전통적인 대위법에 기초하여 작곡을 시도했었습니다. 로보의 작품들 중에서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잘 다듬어지고 표현력이 풍부한 가사에 대한 해석을 바탕으로 진행되는 완벽한 대위법입니다.

그의 작품들을 시대순으로 놓고 볼 때 르네상스 작곡가들의 테크닉도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로보의 작품에서 그가 사용한 정선율기법과 캐논기법은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작곡가들 중 프랑코-플래미쉬 악파인 요하네스 오케겜과 죠스켕 데프레의 영향을 받았고, 그의 모방미사곡에서는, 주로 세비야 출신의 에스파냐 작곡가인 Francisco Guerrero와 이탈리아 팔레스트리나 출신의 작곡가인 Giovanni Pierluigi Da Palestrina의 작곡 스타일을 모델로 삼았습니다. 그중에서도 특별히, 팔레스트리나의 폴리포닉 스타일은 로보의 작곡기법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로보는 또한 그들로부터 다양한 종지법을 사용하고, 불협화음 또한 모방해서 그의 미사곡에 사용했습니다.


로보는 당시 수많은 곡들을 작곡했지만 1755년에 리스본에서 일어난 지진으로 인해 그의 작품들은 손실되어서 현재 전해져 오는 작품들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현존하는 작품들은 대부분이 르네상스 스타일을 바탕으로 한 포르투갈 작곡가들의 대위법적 특징을 띄며, 다른 작곡가들에 비해 저음 성부를 더 두껍게 사용해서 합창의 선율을 더욱 깊은 음색으로 표현한 것이 큰 특징으로 남아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