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크] 게오르크 필립 텔레만

Georg Philipp Telemann 1681-1767

by 이정현

요한 세바스찬 바흐가 오늘날에는 바로크시대를 대표하는 독일출신 작곡가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 당시 독일에서 명성을 떨치던 작곡가는 바로 텔레만이었습니다. 게오르크 필립 텔레만은 1681년 3월 14일, 마그데부르크에서 태어났고, 정원을 가꾸는 일에 취미가 있었던 텔레만은 꽃을 좋아하고 자신의 정원을 가꾸다가, 1767년 6월 25일 함부르크에서 타계했습니다. 바로크 후기 독일출신 작곡가로써, 그는 종교음악은 물론이고 세속음악에도 정통한 작곡가였고, 특히 그의 다양한 스케일의 칸타타들은 그의 종교음악 작품들중에 뛰어난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텔레만은 성 토마스 교회에서 일을 할 때 모든 사람의 존경을 받았었고, 텔레만이 음악감독자리에서 물러나고 그 뒤를 요한 세바스찬 바흐가 맡았죠. 바흐와 텔레만은 아마 음악적으로 경쟁구도에 있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사실 개인적으로 관련이 된 부분이 있습니다. 텔레만은 바흐의 살아있는 아들 중 두번째 아들이었던 C.P.E. 바흐의 대부님이었습니다. (그렇다고해서 J.S. 바흐와 친한 사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훗날 C.P.E. 바흐는 텔레만이 죽고나서부터 함부르크의 다섯개의 주요 교회들의 음악을 감독하는 자리를 맡았습니다.

텔레만은 작품을 어마어마하게 작곡했었는데요, 무려 3000곡 이상이나 되었었고, 그것은 바흐보다 세배 많고, 모차르트보다는 다섯배가 많은 양이었습니다. 텔레만의 음악 스타일은 믿을 수 없을 만큼 그 스펙트럼이 넓었고, 그 안에는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고 독일 양식들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https://www.meisterdrucke.us/fine-art-prints/Unknown-artist/932673/Portrait-of-Georg-Philipp-Teleman

텔레만은 사실 제대로 음악렛슨을 받은 적은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의 뛰어난 재능은 어릴적부터 감출 수 없었고, 악기들을 혼자 독학으로 공부했습니다. 1701년에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법대로 진학을 했지만, 그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았습니다. 텔레만은 그의 뛰어난 재능을 인정받아 요한 쿠나우가 고용되었던 토마스 교회에 오르간 어시스트로써 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고, 2주에 한번씩 일요일마다 연주 될 교회칸타타를 작곡해야하는 임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1705년부터 1708년동안 텔레만은 폴란드 (Sorau, 지금은Żary, Poland)의 궁정에서 오케스트라 지휘를 맡았고, 1708년에서 1712년 동안은 Eisenach 에서 악장을 맡았다가 훗날 지휘자를 역임했습니다. 직업들을 통해서 그는 다양한 음악적 지식을 얻었을 뿐만아니라 프랑크 푸르트 암 마인과 함부르크에서 각각 1712년부터 1721년, 그리고 1721년부터 67년까지 일할 수있는 능력을 키웠죠. 프랑크 푸르트 시절당시 텔레만은 자신의 작품을 본격적으로 출판하기 시작했고, 이를 계기로 독일뿐만아니라 주변국가들에게도 그의 명성이 널리 알려졌습니다. 함부르크에서의 텔레만의 생활은 그야말로 눈코뜰새없이 바쁜나날들이었습니다. 그는 다섯개의 교회에 음악감독으로써 음악을 공급했고, 함부르크 오페라에서도 일을 맡았습니다. 텔레만은 또한 학생들이 만든 음악동아리였던 "Collegium Musicum"을 맡아 동시대에 유명한 작곡가들을 고용하면서, 학생들의 아마추어 오케스트라를 공공장소에서 연주를 하게했으며, 오케스트라의 발전에 큰 기여도 했습니다. 1729년에는 요한 쿠나우의 죽음으로 라이프치히의 토마스교회의 음악감독자리를 제안받았지만 거절했었고, 이 자리는 요한 세바스찬 바흐가 맡게되었었죠.


텔레만의 전성기 음악은 독일, 이탈리아, 그리고 프랑스의 음악양식을 모두 내포하고 있었고, 폴란드와 영국의 음악양식 또한 소화해낸 모습을 출판된 작품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는 교회음악은 물론이고, 오페라와 콘서트를 위한 작품을 동등한 비율로 작곡해냈습니다. 그의 멜로디는 자연스러웠고, 균형잡힌 하모니와 다채로운 리듬은 음악의 아름다움을 극대화 시켰습니다. 즐겁고 경쾌함과 심각하고 때로는 가볍기도 한 음악들은 완성도가 높았고 다양한 음악적 색채를 표현해 내는데 전문가였습니다.


텔레만은 후기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작곡가로써 손색이 없었고,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그의 작품의 스펙트럼은 넓었습니다. 어마어마한 양의 작품을 낳은 텔레만은 '단지 직책에 따르는 의무로서 다작을 일삼은 작곡가'라 평가되어지기도 했지만, 20세기에 음악학자 막스 슈나이더와 프랑스 문학가 로맹롤랑의 논문발표이후로, 텔레만의 음악양식의 중요성을 인정받았고, 그에 대한 잘못된 편견들은 사라졌습니다. 1910년 논문발표 이후로, 1930년대부터 텔레만의 작품들이 새롭게 출판되어졌고, 많은 연주자들의 관심이 집중되기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