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톡방

이제 그만 저를 놓아주세요.

by 김재호

조금씩 바뀌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많은 직장인들이 카카오톡 업무 단체방이라는 수렁에 빠져서 온전한 휴식이나 개인적인 시간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내가 직장 생활을 할 때도 그랬는데, 지금까지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아내를 보면 업무 단톡방이 주는 압박감과 긴장감은 여전해 보인다.


예전 일이지만 '카톡' 알림 소리가 너무 싫었던 나와 아내는 재미있는 장난을 친 적도 있다. 나는 카카오톡 알림 소리를 '목탁'으로, 아내는 '성가대'로 설정했는데 두 종교 중 어느 종교가 더 훌륭한지 밤낮과 주중 주말을 가리지 않고 쉴 새 없이 서로의 교리를 설파했었다. (종교적 신념과 관련된 발언은 전혀 아니니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몇 년 전 글 쓰는 일에 집중해 보겠다는 원대하면서도 무모한 결정을 내린 후부는 업무와 관련된 카카오톡 단체방은 완전히 사라졌다.(물론 월급도 함께 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남아있던 문제의 방이 있었으니 그것은 고등학교 동창생들의 방이었다. 처음 그 방에 들어갔을 때는 정말 좋았다. 중년으로 접어든 시기에 다시 연락이 닿은 친구들의 소식은 정말 반갑고 흥미진진했다. 누군가 학창 시절 사진들을 올리면 그때의 추억들을 각자 하나둘 꺼내서 깔깔거리며 웃었고, 이혼을 한 친구들에게는 심심한 위로(혹은 축하)의 말을 건넸으며, 각양각색의 직업군이 있다 보니 급할 때는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역할도 했다. 그러다 온라인으로 나누는 대화에 만족하지 못하고 얼굴 한 번 보자는 공감대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결국 우리는 거의 30년 만에 다시 한 자리에 모였다.


그날 이후로 연락이 되지 않거나 초대를 거부한 친구들을 제외하고 30여 명이 모여 있는 단체방은 교육, 예술, 문화, 건강, 쇼핑, 여행, 투자 정보 등이 무서운 속도로 업로드되기 시작했다. 평소에도 여러 명이 모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단체방에서도 그저 조용히 글을 읽는 편이었지 쓰는 일은 드물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아주 가끔 공감되는 이야기가 오고 가서 나도 한 마디 거들라치면 이미 다른 주제로 흘러가 버린 뒤라 괜히 뒷북을 치는 것 같아 주저하게 되었고, 새로운 이야기를 꺼내자니 내가 미처 읽지 못하고 지나쳐버린 이야기는 아닐까 걱정이 되어 포기했다. 게다가 하루에도 수백 번씩 울리는 카톡 알림 때문에 글쓰기에 집중이 되지 않아 알림 해제를 했지만 애플리케이션 아이콘에 표시되는 숫자는 밀린 숙제처럼 느껴졌고, 나는 그 방이 조금씩 불편해졌다.


지인들과 술자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어느 날. 씻고 자려고 누웠는데 200개 이상의 읽지 않은 카톡 메시지가 있는 것을 보고는 그냥 단톡방에서 나오기로 결심했고 바로 실행에 옮겼다. 그리고 푹 잤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읽지 않은 메시지가 다시 수십 개 올라와 있었다. 친구 한 명이 나를 다시 초대했고, 나는 다시 그 방의 일원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너 실수로 나간 거지? 그랬을 줄 알고 다시 초대했다.'는 글에 나는 댓글을 달아주었다.

'응. 미안. 다른 방 나간다는 게 어제 마신 술이 과했는지 그렇게 되었네.'

그렇게 또 몇 달이 흘러가자 단톡방에 메시지가 올라오는 속도나 양이 제법 줄기 시작했지만 몇몇 친구들의 메시지는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여전히 잠시 딴짓을 하면 여지없이 메시지가 쌓였고, 내용은 이제 대부분 자신들의 일상 공유로 변하기 시작했다. 평일에 비싼 호텔에서 가족들과 여유를 즐기는 사진들, 서울의 유명한 학원가에 고급차를 타고 아이를 픽업하는 사진들, 서로서로 상대방 집값이 더 올랐을 거라는 이야기, 멋들어진 곳에서 값비싼 음식을 먹는 사진들, 심지어 정부와 정치인들을 비방하는 욕까지 올라오더니 서로 감정을 드러내며 싸우기도 했다.


나는 내가 왜 그 방에 계속 있어야 하는지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학교였다면 좋든 싫든 같은 교실에 앉아 있어야 했겠지만 우린 더 이상 같은 반 학생이 아니다. 물론 좋은 면도 여전히 남아 있었다. 경조사 공유가 편해졌고, 여전히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로써의 역할은 유효했다. 하지만 까칠한 나로서는 그 방에서 점점 벗어나고 싶어졌다. 어쩌면 잘 나가는 친구들이 부러워서였을지도 모르고, 그저 같이 어울리지 못하는 내가 한심 해서였을지도 모르겠지만 굳이 그 방 안에 남아서 궁금하지 않은 그들의 일상을 매번 마주할 필요는 없다고 느꼈다.

지난번처럼 그냥 나가면 다시 소환될 것 같아서 적당한 핑곗거리를 만들었다. 밝히고 싶지 않은 개인적인 사유가 있어서 잠시 방에서 나가니까 나중에 일이 잘 해결되면 그때 다시 돌아오겠노라고. 사실 따지고 보면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었다.


그렇게 나는 방탈출을 했고 홀가분해졌다.


아마 그 방은 내가 있을 때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읽지 않은 메시지에 신경 쓸 필요도 없고, 나와 다른 친구들의 일상을 비교하지 않게 되었다. 그저 나와 마음이 통하는 친구들과 수시로 통화하거나 가끔씩 만나 소주잔을 기울이며 돈독한 우정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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