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지에서의 이틀 밤

by 김재호

아내 : 술 마신 죄가 가볍지 아니하니

거실 구석에 있는 소파 섬으로 유배를 가도록 하시오.


사내(나) : 소인 죄가 그리 무겁지 아니 한데

어찌 홀로 섬에서 밤을 보내란 말이오.


딸 : 어허, 명을 따르지 않으면 더한 벌을 내릴 것이야.



깊은 밤.

가뜩이나 사내의 덩치가 곰 만한데

유배지는 좁고 좁아

반 바퀴를 구를 공간도 없으니

쉬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던 차.


번쩍번쩍

밤 사이에 낮이 끼어들고

우르르 쾅쾅

고요를 굉음이 갈라놓으니

그 기세가 예사롭지 않았다.


사내가

빛과 소리 사이의 시간 간격을 가늠해보니

시시각각 유배지로 다가오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리 바로 위에서 생난리가 나니

작은 섬 위 죄인은

귓구멍 속에 커다란 노랫소리를 쑤셔박으며

심장을 진정시키기 여념이 없었다.


홀로 두려움에 떨고 있자니 그 신세가 매우 한탄스럽더라.




날이 밝고

죄인이 풀려나 묻기를.


사내(나) : 간밤에 천둥과 벼락이 지나갔는데

별일 없었는가?


아내와 딸 : 무슨 소리요. 잠만 쿨쿨 잘 잤는데.

헛소리 말고 아침이나 먹읍시다.



밤이 되자

지난날의 과오를 잊고

사내가 또 술에 취해 있으니 아내와 딸이 분개하여 이른다.


아내 : 이틀 연속 술을 마셨으니

가중 처벌이 마땅하나

그간의 정이 있어 오늘도 소파 섬으로 귀양살이를 명한다.


딸 : 이리 쉽게 봐주니 매번 저리 구는 것 아니겠습니까?

조금 더 무거운 벌을 내리심이 어떻겠습니다.


사내(나) : 소인, 죄를 십분 뉘우치고 있으니

지금 당장 유배길에 오르겠습니다.


그렇게 사내는 이틀 연속 좁은 소파 섬에 갇혀있자니

어제보다 익숙하여 저절로 최적의 자세가 취해지더라.


하지만

장마와 태풍의 시기인지라

번쩍번쩍

우르르 쾅쾅

벼락과 천둥이 찾아오고

사내는 또다시 심란한 밤을 홀로 보내게 되었다.




맑은 아침을 오롯이 맞이하기에는

부서진 듯 뻐근한 허리와 목이 영 부자연스러워

사내의 심기가 날카로운데.


사내(나) : 어젯밤에도 천둥과 벼락이 발광을 하며 지나갔는데

별일 없었는가?


아내 : 이틀 연속 무슨 소리요. 잠만 쿨쿨 잘 잤는데.

아무래도 술이 과하여 헛것을 보거나

험한 꿈에 시달리는 듯한데

이대로 놔두면 큰 화를 치를지도 모르겠구나.


딸 : 맞사옵니다.

비록 술에 취한 심신 미약 상태였음을 고려해볼 수도 있겠으나

두 번씩이나 저러니 엄한 벌로 다스려야겠습니다.


사내(나) : 무슨 소리요? 어찌 이틀 연속으로 그런 일이 있었는데

하나같이 전혀 모른단 말이오?

어찌 저리 둔할 수가 있는지? 쯧쯧.

내가 곰이 아니라 당신네들이 미련 곰탱이가 아닌가 하오만.


아내 : 허허 이렇게 나오시겠다.

밤에 천둥 번개를 듣거나 본 자는 손을 드시오.


사내 혼자 손을 든다.


아내 :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한 사람은 손을 드시오.

사내의 아내와 딸이 손을 든다.


사내(나) : 정녕 이게 다수결로 결정할 문제인가?

이건 심히 부당한 처사요.


딸 : 창 밖에 번개가 남았는가, 천둥이 남았는가?

저리 고요하고 아름다운 아침이거늘

어찌 아무런 증거도 없이 본인의 결백만 주장하는가?

거짓말을 계속 입에 담는다면 그냥 넘어가지 못할 줄 알아라.

어머니.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양반이 술에 취해 저리 구니

최소 금주령 1주일에 처함이 옳은 줄 아룁니다.


아내 : 그것으로 저 버릇이 고쳐지겠느냐?

술을 마신 죄, 뻔뻔하게 거짓말을 고한 죄,

증거도 없이 우긴 죄, 멀쩡한 사람을 우롱한 죄,

그리고 상습범임을 함께 고려해 볼 시

별도의 처분가 내려질 때까지 무기한 금주를 명한다.


사내(나) : 아니 되옵니다.

내 모든 죄를 인정하고 이리 두 손 모아 빌 테니

부디 벌금형 정도로 선처를 부탁드립니다.

이틀 내내 천둥도 없었고 번개도 없었습니다.

천부당만부당입죠.

암요, 그렇고 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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