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자꾸 ‘초심’으로 돌아가라고 하나요?
할 수 있다는 패기와 스스로를 불태우겠다는 열정이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졌다고 느끼기 때문이겠죠.
왜 자꾸 ‘초심’이 변했다고 하나요?
세상모르고 허우적거리며 간이고 쓸개고 다 내어줄 것 같던 사랑이
시간이 지나면서 약해졌다고 느끼기 때문이겠죠.
사랑하는 사람을 처음 만나서 연애를 하는 시기에는
하루라도 보지 못하면 너무 그립고
하늘의 별도 따다 주고
물에 빠지면 무조건 너부터 구하겠다며
어여쁜 뻐꾸기를 시도 때도 없이 날리죠.
그렇게 소위 말하는 ‘초심’이 사그라지면
상상도 못 했던 싸움이 시작됩니다.
콩깍지가 벗겨지는 시기이죠.
사실 이때가 가장 중요합니다.
아무런 이유 없이 무턱대고 사랑만 외치는 시기가 지나면서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이때 보통 결심이 섭니다.
‘내가 이 사람의 이런 모습까지 계속 좋아해 줄 수 있을까?’
‘그동안 이 사람을 위해 진짜 내 모습을 숨기고 있었는데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사는 게 맞을까?’
처음 무언가에 빠지면 그게 전부라고 여기면서 앞 뒤 재지 않고
그 속에서 그 감정과 열의를 마구 뿜어냅니다.
‘이게 진정한 내 길이지.’
‘그래 이게 바로 내가 원했던 거야.’
‘여기에 뼈를 묻겠어.’
‘누가 뭐라 해도 난 이것을 해내고 말 거야.’
‘이 사람 아니면 난 죽을지도 몰라.’
분명,
‘그렇지. 그런 게 진정한 '초심'이지.’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죠.
맞습니다. 그게 초심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초심은 어쩔 수 없이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맹목적인 사랑이 깨지는 순간에 말이죠.
그래서 저는 초심을 다르게 정의하고 싶습니다.
콩깍지가 벗겨지고
있는 그대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고
스스로의 가능성과 한계를 오롯이 마주했을 때
그 순간의 마음을 ‘초심’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달콤함 권력과 분위기에 반하고 취해서
마구 내뱉었던 말들은 초심이 아니라 그냥 허언입니다.
허언이었음을 스스로 깨달았으면 사과와 용서를 빌고
올바른 길로 다시 가야겠죠.
우리는 그런 거짓 초심에 속아서도 안 되겠고요.
콩깍지 시절만 기억하며
“그때 하고 비교해서 너무 많이 변했어.”
“별 왜 안 따죠?”
“뼈를 묻는 다더니 요즘 슬슬 피하네.”
“입사 때 불사르겠다던 열정은 다 식은 거야?”
이런 말은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변심과 고심을 지나서
소심과 의심을 이겨냈을 때
드디어 확신에 찬 ‘초심’이
인생의 중심이 되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