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by 김재호


계단을 내달리며 유리 구두 깨질까

가슴 졸이는 소녀의 식은땀,

시간은 그렇게

가득 차지도 못하고

훌쩍 끓어 넘치는 뚝배기 같았다.


꽃송이 떨어질까 두려워

뿌리째 가방에 넣었던 이름 모를 들풀,

시간은 그렇게

한 땀 한 땀 이름표를 새겨도

새벽 오기 전 사라지는

내무반 군용 팬티 같았다.


시계는 왜 그리 화가 났을까.

길이를 재고 잘게 나누더니

뾰족한 바늘들이 감시하는

비좁은 감옥에 시간을 가두었다.


틱톡 틱톡

째깍 째깍


시간이 시간을 죽이는 소리

그 소리를 멈추고 싶었다.

그 소리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비명을 피해 뛰어든 깊은 물속

보글보글 멀어지는 무지갯빛 공기방울

시간은 그렇게

뱉을수록 간절해지는 들숨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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