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가 작가(인간)를 따라가면서 하는 간접 체험이라면,
글쓰기는 창조자(신)를 따라가면서 하는 간접 체험이다.
출처 : 김재호
작가들은 새로운 세상을 책에 옮겨 담습니다. 그 과정을 창조라고 불러도 과하지 않게 여겨집니다. 하얀 모니터 화면이나 백지를 채워나가는 작업을 통해서, 이야기를 만들고 그 속에 캐릭터를 조각합니다. 의미를 잉태한 문자들이 적절하게 배치되고, 시간이 흘러 조각들이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기 시작하면 또 하나의 세계로 성장해 나갑니다.
비단 지금 살고 있는 현실만이 오감을 자극하고 육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닙니다. 책 속에도 음악이 있고, 맛이 있고, 추위와 더위가 있고, 향기와 악취 그리고 아주 섬세한 형상이 존재합니다. 또한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기 전, 무언가 서늘한 기운이 독자의 주변을 맴돌아 등골이 오싹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책 속의 세상에서 너무 멀리 벗어나버리면 독서로써의 가치가 사라져 버립니다. 작가와 적절하게 거리를 유지하면서 관계를 유지해 나가야 합니다. 작가가 잘 꾸며놓은 놀이터에서 뛰어다니는 일은 정말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반면에 글을 쓰는 것은 읽는 것과 비교해서 한없이 어렵게 느껴집니다. 자판을 순서 없이 마구 두드리거나, 하얀 종이 위에 이리저리 연필을 놀려봤자 낙서에 불과합니다. 무엇이든 쓸 수 있지만, 아무것도 쓰지 못하는 상황을 마주하면 온 몸에서 기운이 쭉 빠져나가고, 껍데기만 남은 몸뚱이는 축 늘어져 숨만 간신히 쉽니다.
어쩌면 작가가 되겠다는 저의 꿈은 그냥 꿈으로 남기는 편이 정신건강에 좋을 듯합니다. 쌀밥을 좋아한다고 해서 벼농사를 짓겠다는 포부를 갖는 것은 심히 무모하게 느껴집니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처한 상황을 바라보고, 부적절한 아집에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야 하는 것이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글을 쓰고 싶습니다. 쓰고 또 쓰다 보면 훌륭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뭐라도 남기고 죽게 되겠죠. 작가가 되지 못하더라도 글은 남을 테니까요. 수확은 못하더라도 모내기 정도까지라도 가봐야겠습니다. 일단 심어 놓으면 어설프게나마 자라긴 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