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과 달라야 살아남는다.
차별화하지 않으면 묻혀버린다.
나는 다수에 속하고 싶지 않다.
남들과 다른 내 모습이 좋다.
특별해져야 나를 드러낼 수 있다.
시대가 바라는 인간상이 있습니다.
사회의 통념, 유행, 사상 등으로 표현되는 것들이 주류를 만들어 개인의 사고를 침식(侵蝕)합니다. 그리고 하류로 가면 갈수록 더 큰 물결을 이루게 됩니다. 새로운 주류가 그렇게 휩쓸고 다니면 수명을 다한 구시대의 정신을 흡수하거나 지하로 밀어 냅니다.
가벼운 예를 들어 보자면, 8명이 중식당에서 식사를 주문합니다. 7명이 자장면을 주문했는데, 한 명이 “나는 짬뽕.”이라고 하면 이상하게 쳐다보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한 마음 한 뜻으로 똘똘 뭉쳐야 가장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여겼던 때였죠.
그런 시기가 흘러가버리고 분위기가 바뀌어, 7명이 자장면을 시켰다고 해서 본인도 그들을 따라 “나는 짬뽕을 정말 좋아하지만, 모두가 다 자장면이니까 어쩔 수 없이 나도 자장면 주문할게.”라고 하면 그 사람을 줏대 없는 사람이라고 여기는 변화의 흐름이 있었죠.
그런데 이제는 상황이 또 달라졌습니다.
‘나도 자장을 먹고 싶지만, 다들 자장을 선택한다고 하니 억지로 짬뽕을 먹겠어. 매운 것을 먹으면 속이 쓰리지만 그래도 참겠어. 저항 정신이란 이런 거야. 남들과 다르게 가는 것.’
저만의 오해일지도 모르겠지만 저항 자체가 시대의 흐름이 되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전류가 흐르는 전선에 저항이 전혀 없을 수는 없습니다. 그 저항을 이겨내지 못하면 전류는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하고 결국 아무런 결과도 얻지 못합니다.
그런데 점점 전류가 되어 함께 흐르기보다 다들 저항이 되고자 합니다.
그동안 '시대의 저항 정신'이 불합리와 부패 그리고 편견과 고정관념에서 오는 불평등을 타파하기 위한 수단이었다면, 이제는 모든 것에 불만을 나타내는 쪽으로 변질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모든 것이 문제고 모두가 저항이 되어버렸습니다. 저항은 스스로 움직이지 못합니다. 흐름을 방해하거나 멈추게 하는 것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역량이자 역할입니다. 정의로운 저항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 가치를 인정받습니다. 하지만 딴지를 걸고, 그저 발목을 잡기 위한 저항은 모두를 힘들게 할 뿐입니다.
Everything changes anything,
Everything will be changed by anything.
이제는 모두가 주체가 되어 모두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시대입니다. 그 말은 동시에 모두가 객체가 되어 영향을 받고 바뀌고 있다는 뜻도 됩니다. 모든 일에 주체이면서 객체가 되어버리니 시시각각 변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에 만족할 여유가 없고, 항상 쫓기 듯 갈아갑니다.
개인의 존엄과 취향은 인정해 주는 것이 맞겠으나, 남을 부정하면까지 자기 자신을 돋보이게 하거나 튀려하는 것은 분명 다른 문제입니다. 물이 흘러야 할 때는 같이 흐르고, 댐이나 둑 혹은 방파제가 필요한 사안에 대해서는 적적하게 제 목소리를 냈으면 좋겠습니다.
무분별한 저항의 시대가 되는 것은 모두에게 옳지 않을 것입니다. 시대에 저항하는 것이 시대에 순응하는 것보다 항상 고결하고 숭고한 것은 아닙니다.
‘공감’이라는 단어가 요즘처럼 자주 보이는 이유는 주변에 넘쳐나서가 아니라 턱 없이 모자라기 때문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