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아직은?

by 김재호

오른쪽 엄지발가락에 있던 구멍 슬며시

왼쪽 새끼발가락으로 옮겨갔다.

팽팽하던 분홍 동그라미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쭈그러들었다.

엄지발가락이 키운 발톱 탓인데

부끄러움은 새끼발가락의 몫이라니.

중간에 빽빽하게 들어찬 나머지 발가락은

그저 고개를 숙이고 있다.

저쪽 새끼발가락은 그래도 괜찮잖아. 라고 쑥덕이며.

수다스러운 입 있던 자리 은근슬쩍

게걸스러운 구멍이 되었다.

펄떡이며 침 튀기던 살덩이는

꿀의 달콤함에 녹아 사르르 흘러내렸다.

먹은 자들이 버리고 간 진실인데

안타까움은 남은 자의 몫이라니.

삐뚤빼뚤 박혀있는 위아래 누런 이들은

사시 사이 끼어있는 찌꺼기를 본다.

아직은 먹고살만한 세상이잖아. 라고 자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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