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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호 Mar 14. 2023

어느 카페 안 세 남자와 한 여자

현재, 카페 안.

20대 중후반 정도 되어 보이는 카페 주인은 손님들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 테이블이라고는 달랑 3개밖에 없는 작은 가게의 특성상 다음 손님을 위한 빈자리가 없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지금처럼 3명의 남자가 하나씩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아있는 모습은 가게 문을 연 이래로 처음이었다. 게다가 더 이상한 점은 그들이 서로를 의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치 오래된 앙금을 품은 친구사이인데 화해를 하기 위해 만났다거나, 역사적으로 앙숙인 세 나라의 왕들이 선전포고를 위해서 모인 자리 같았다.




일주일 전.

작가지망생인 재호는 하릴없이 길을 걷고 있었다. 작가지망생이라는 것은 직업이 아니다.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자에게는 수험생이라는 타이틀이 어색하지 않고, 고시를 준비하는 자에게는 고시생이라는 나름 납득이 가는 이름표가 붙지만 작가지망생은 그렇지 못하다. 보통은 백수로 인식하고, 그렇게 대하는 것에 서슴없다. 우산도 챙겨 나오지 않았기에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최대한 피해 보려는 요량으로 가능하면 건물 벽이나 처마 쪽에 붙어서 걸었다. 그런 그의 발걸음을 바닥에 놓인 하얀 봉투가 막아섰다.


같은 시간.

철민은 길 건너에서 하얀 봉투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미끼를 물기 바라는 낚시꾼의 심정으로. 그러다가 누군가가 주변에 나타나면 담배를 입에 물고 딴청을 피웠다. 우산이 시야를 가리긴 했지만 담배에 물이 묻는 것을 원치 않았고, 본인의 얼굴을 가려주고 있다는 안도감 때문에 그냥 들고 있기로 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너저분한 차림새의 남자가 우산도 없이 봉투를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봉투 앞에서 멈춰 섰다. 철민은 담배를 바닥에 던지고 휴대전화를 꺼냈다.




삼일 전.

상수는 투명한 비닐에 들어있는 지폐를 보며 감탄했다. ‘이렇게 정교하게 만들었다니. 꽤나 공을 들였음이 분명해. 이 정도 수준이라면 개인이 아니라 제법 큰 조직이 꾸민 짓이겠지.’ 전날 밤에 젊은 여성이 경찰서에 찾아와 길에서 주웠다며 오만 원권 지폐를 주고 갔다고 했다. 기록도 남기지 않고. 큰돈은 아니었지만 절차에 따라 위폐 여부를 확인하였고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나왔다. 상수는 전담팀을 꾸리라는 상부의 지시를 받았지만, 그러자면 시간이 걸릴 것이 뻔했고 그 사이에 피해가 커질 것이라 판단했기에 혼자 먼저 움직이기로 했다. 우선 돈을 주웠다는 곳의 CCTV 확인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오일 전.

재호는 자신을 따라다니는 남자의 존재를 단번에 눈치챘다. 검은 옷과 검은 모자 그리고 운동화. 어제도 분명히 여러 차례 봤었는데 오늘도 떡하니 마주치자 위험을 감지한 육감이 경고음을 울렸다. 처음에는 우연이라고 여기면서 무시하려 했지만 티가 나도 너무 났다. 평소에도 추리, 스릴러, 탐정, 형사물 등등의 장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재호인지라 허술한 미행 따위는 금방 간파할 수 있었다. ‘이유가 뭘까? 최근에 지은 죄라곤 가끔 무단횡단을 하거나, 쓰레기 분리수거를 소홀히 하는 정도밖에 없는데. 더더군다나 누군가에 피해를 입히거나, 사기를 친 과거도 없다. 그나저나 이틀 전에 주은 돈은 어느새 거의 남지 않았네.’ 재호는 열여덟 장을 쓰고 남은 두 장을 다시 주머니 속에 넣으며 그 돈으로 무엇을 할지 고민했다.


같은 시간.

누군가를 몰래 뒤따라 다니면서 관찰하는 일을 하고 있자니 철민은 마치 형사나 탐정이라도 된 기분이 들었다. 웬 떡이냐 하면서 돈을 마구 써대는 녀석을 지켜보며 일이 술술 잘 풀리는 중이라고 고용인에게 보고도 했다. 다만 자꾸만 뒤를 힐끔 거리며 본인의 존재를 의식하고 있는 것 같아서 더 조심하라고 스스로를 다그쳤다. ‘이제 맡은 일이 거의 끝나가는군.  마무리만 잘하면 된다. 경찰들이 무능력한 것일까? 아니면 이번에는 정말 성공한 것일까? 아무튼 결과만 좋으면 되는 거지. 이번엔 정말로 내 주머니가 두둑해 질지도 모르겠어.’          



하루 전.

상수는 CCTV를 뚫어지게 보다가 급하게 정지버튼을 눌렀다. 경찰서에 찾아왔다던 여자가 지폐를  취득했다고 말해준 장소에서 뭔가 넋이 나간 듯 서성이던 사내가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다가 무언가를 흘렸다. 모르고 봤다면 그냥 휴지조각이나 쪽지로 오해했겠지만, 보고 싶은 것이 확실한 상황인지라 그게 오만 원권 지폐라고 확신했다.




사일 전.

재호는 사라진 지폐가 못내 아쉬웠다. 분명 어딘가에 흘린 것 같은데 왔던 길들을 되돌아가면서 샅샅이 찾아봤지만 결국 허탕을 쳤다. 90만 원을 원 없이 쓴 것으로 위로를 하려고 해 봤지만, 잃어버린 10만 원이 더 아까웠다. 결국 포기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주머니를 털어 막걸리를 세 통 샀다. ‘그나저나 저 남자는 아직도 저러고 있네. 딱히 겁을 주는 것도 아니고, 멀리서 바라만 보고 있으니 어떻게 할 방법이 없네. 자주 봤더니 이젠 친구처럼 느껴지는데?’ 


사일 전 같은 시간.

철민은 재호 때문에 당황스러웠다. 녀석이 바보 같이 지폐를 바닥에 흘린 것이다. 재호가 사라지면 뛰어가서 수거할 생각이었는데, 바로 어떤 젊은 여자가 지나가다 발견하고는 그 길로 들고 가버렸다. ‘젠장! 따라가서 내 돈이라고 했어야 하는데.’라고 뒤늦게 후회를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것으로 모자라 다 말라버린 물이 되어버렸다. 상부에 보고하기 전에 적절한 핑곗거리를 마련하기로 했다.




다시 현재, 카페 안.

철민은 재호가 눈치를 채고 위조지폐를 일부러 길바닥에 버렸다는 의심 때문에 미행을 멈출 수 없었다. 확인이 필요했다. 어쩌면 경찰에 신고를 했을지도 모를 일이라 여겼다. 본인을 유인하기 위해서. 상부에서는 경찰이 붙지 않았는지 당분간 더 밀착해서 지켜보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내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철민은 재호의 현재 상태를 정확히 알아내기 위해 그를 따라서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낯선 남자가 카페 안으로 들어오자 철민은 주머니 속에 칼이 잘 있는지 확인했다. 그리고 카페 주인의 얼굴이 어딘가 낯이 익다고 느꼈다.


재호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냥 동네 카페에서 조용히 글이나 쓸 생각이었는데 며칠 동안 미행하던 사람이 이번에는 대담하게 카페 안까지 따라오더니 본인 옆에 앉자 바싹 긴장한 상태다. 거기다가 이번에는 두 명이다. 험상궂게 생긴 남자까지 등장하자 재호는 작가를 꿈꾸는 사람답게 최악의 상황까지 매우 디테일하게 상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상상이 최고조에 다다를 때쯤, 카페 주인을 향해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상수는 재호를 알아봤다. 화질이 또렷하지는 않았지만 경찰의 직감이 화면 속 남자가 확실하다고 알려주고 있었다. 지폐가 발견된 장소 주변에서 잠복한 결과로 카페까지 추적해 올 수 있었다. 그리고 카페 안에 같이 있는 다른 남자가 공범일지도 모른다는 의심도 거두지 않았다. 그리고 주문을 하다가 한 가지 더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CCTV에서 재호가 돈을 흘리자 바로 주워갔던 여자가 카페 주인과 어딘가 모르게 매우 닮았다는 사실.


카페 안에 있는 남자 셋은 각자의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있다. 카페 주인인 젊은 여성은 그 모습을 보며 휴대전화를 들었다. 여차하면 112에 신고를 하기 위해서. 얼마 전에도 경찰서에 다녀왔었는데 자꾸 얽히는 것 같다며 짜증이 난 얼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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