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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호 Nov 05. 2023

계속 ‘꾸는’ 것.

너를 만나면 한눈에 알아볼 거라고 믿었어.

첫눈에 반한 사람처럼 온몸에 전율이 일고

숨이 막히고

머릿속이 하얗게 변할 거라고 생각했어.     

신탁(神託)이 깃드는 순간이 그럴 거라고 짐작하면서.


오매불망 너를 찾아 헤매던 긴 시간을

언젠가는 보상을 받겠다는 일념으로

자꾸만 멈추려는 발걸음을 재촉했지.     


처음,

그래 처음에는 마냥 반가웠어.

너를 마주하게 된

기대와는 달리 너무 무덤덤해서

과연 네가 진짜로 네가 맞는지 확신이 서질 않았지.


하지만 마음속 어딘가에서

형언하기 힘든 묵직한 끌림이 있었다는 사실은

죽는 날까지 부인하기 힘들 거야.     


애지중지?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너를 아끼고 보살피면서

내 인생을 쏟아부었어.     


다른 운명은 없다고 여기며

어깨를 짓누르는 압박감과

두 다리에 묶인 족쇄 따위는

그저 행복으로 다가가기 위한

일종의 통과의례라고 치부했지.     


조금씩 성장하고

점점 강해지는 모습을 볼 때마다

두 눈에서 떨어지던 눈물은

나의 결핍을 채워주고

참아왔던 갈증을 해소해 주는

생명수나 다름없었지.     


물론 좋은 날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어.

아무도 없는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유리조각이 깔린 길을 맨발로 달리거나

태생적 한계가 주는 강박을 견디지 못해

그냥 무덤 속으로 피하고 싶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등을 돌려버리면

너는 내 그림자 속에서

칠흑 같은 공포에 잠식당하며

말라죽어 버릴까 두려웠어.

     

그래서 오늘도 너에게

눈빛으로 관심을 쏟으며

어디 상한 곳이라도 있을까

한 시도 눈길을 떼지 않고

꼭 끌어안고 있단다.     


남들과 비교할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 괜한 걱정하지 말고

너는 내 옆에 있어주기만 하면 돼.

네가 나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나 역시도 그럴 테니까.     


그래도 다행인 점은

네가 빚이나 업보는 아니라는 것이야.

그 사실을 얼마 전에 깨달았지.     


‘꿈’은

갚거나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계속 ‘꾸는’ 것이니까.


이자도 없고

연체도 없고

상환의 의무 없고

신용조회도 없고

그리고 무엇보다

한도도 없이

꾸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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