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독(旅毒)]
매일매일 피곤하걸 보니
삶은 여행이 맞나 보다.
[겨울, 지금, 봄]
꽃을 시샘하는
나를 닮은
철없는 계절.
[소유]
가진 것은 유한한데
버릴 것은 무한하니
오늘도
마음이 묵직하다.
[문신(文身)]
하얀 피부 긁어내고
그 안을 잉크로 물들인다.
차마 지우지 못할 이야기이기에
사뭇 진지하고 조심스럽다가도
끼적끼적 점점 낙서가 되어간다.
뭐, 빈 페이지가 아직 있으니까.
[새것의 유효기간}
어느덧 3월이다.
새해였던 2024년 이제는 새해가 아니려나?
어느덧 18일이다.
새달이었던 3월도 이제는 헌 달이라 해야 할까?
오후가 되면 헌 날이 되고
오십이 넘으면 헌 사람이라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오늘은 새봄인 줄 알았는데
아직 낡은 겨울이구나.
[온난화]
열정적으로 온기를 나누더니!
덮어놓고 온정을 기부하더니!
결국 이렇게 되었구나.
지구가 따뜻해졌다.
마치 열병처럼.
[진짜 비밀]
내 비밀은
비밀번호 뒤에 숨어 있지 않다.
[무서운 맛]
먹다가 둘 중 하나 죽어도 모를 맛이라면
분명 내가 죽는 거겠군.
[알아도 이 정도인데]
겨울 뒤에 봄이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첫 봄을 맞이한다면 그 얼마나 경이로울까?
내일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오늘을 산다면 그 또한 신비롭겠지.
[핑계]
내 사랑을 증명하지 못하는 이유는
정의를 내릴 수 없기 때문이야.
[남은 고통]
방생(放生).
잡았다가 놔준다고 해서
죄가 사라질까?
용서가 될까?
[공든 탑]
튼튼하고 높은 돌탑이 되려면
가장 크고 무겁고 강한 돌이
제일 낮은 자리를 자청해야 한다.
공만 내세우려는
세상과는 좀 다르군.
[무죄]
빼앗고
훔치고
홀리고
사로잡고
울려도 된다.
마음은 너그러우니까.
[시장]
반찬이 변변찮아서
한 끼를 건너뛰었더니
엄청난 반찬 가게가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