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 '위기'도 다 옛말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야생 생활을 하는 저희는 없죠. 이유야 많겠지만 매번 끔찍한 죽음으로 내몰리는 상황이 제법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봅니다. 아무리 아이들을 위한 일이라지만 선뜻 뾰족하게 잘린 수수밭에 몸을 던지는 희생은 감당하기 힘들죠. 해외로 눈을 돌려봤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습니다. 캐스팅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그럼 가짜로 꾸미거나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하면 되지 않을까요?"
"요즘 아이들과 학부모의 눈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전통을 유지해야 한다는 압박도 있고요. 그리고 이건 내부적인 논쟁거리인데요. 사실 저희가 맛도 없는 떡을 빼앗아 먹고 아이 엄마까지 해치거나 어린아이들을 괴롭히다 보니 부정적인 이미지가 팽배해져서 서로 눈치만 보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이번에는 두 아이들을 거두어주는 하늘나라의 이야기를 잠시 다루겠습니다. 시시각각 올라오는 아이들에게 해와 달이라는 중요한 임무를 나누어 주고 있는데요. 처음에는 일을 나눠서 할 수 있다니까 환영하는 분위기였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정통한 내무 소식통에 따르면 초 단위로 교대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마저도 일이 없어서 빠른 속도로 별자리까지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과연 무분별하게 일자리를 보장해 주는 것이 옳은 일일까요? 갖은 노력으로 후보에 오른 사람들이 부당함을 느끼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잠시만요. 왜 우리 아이들에게 그러는 겁니까? 저희들이 아이들을 위해 그동안 쭉 호랑이에게 먹잇감이 된 것은 어쩌란 말입니까? 하늘에서 그 정도도 못해줍니까? 고작 일자리 하나 마련해 주는 게 뭔 대수라고요. 앞으로도 저희 엄마들은 얼마든지 고통을 감내할 것입니다. 아이들의 미래만 확실하다면 말이죠."
"네. 어머니. 따로 발언 시간을 드리려고 했는데 말이 나온 김에 뭐 좀 여쭤보겠습니다. 최근에 떡 경연대회에서 우승을 하시고 여기저기 섭외가 많이 들어온다던데요. 그래서 이민 온 엄마들을 몰래몰래 대역으로 쓴다거나 아이들끼리 있는 집이 불안해서 여러 학원으로 돌린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그게 사실인가요?"
"아니, 감히 누가 그런 망언을 한단 말입니까? 누굽니까? 빨리 이름을 말하세요."
"진정하십시오. 아니면 아니라고 하시면 되지 이렇게 소리를 지르실 거 까지야. 자, 지금 동아줄을 만드는 업체 사장님과 전화 연결이 되었는데요. 사장님. 안녕하십니까?"
"네. 안녕하세요."
"요즘 업종을 바꾸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네. 맞습니다. 썩은 동아줄을 생산한다는 오명으로 인해서 그간 타격이 심했습니다. 아무리 급여를 많이 준다고 해도 다들 입사를 기피하는 바람에 도산 직전이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중국에서 저희가 하던 일을 해준다고 해서 한시름 놓았습니다. 저희도 이제 세상의 흐름에 맞춰서 AI 산업애 진출할 계획입니다."
"아, 그러시군요. 과연 중국산 동아줄이 제대로 된 품질을 유지해 줄지 의문이 들긴 합니다. 멀쩡한 동아줄이 소품으로 사용된다면 전체적인 흐름이 망가질 텐데 말이죠."
"뭐. 그건 그쪽에서 알아서 하겠죠. 저희 코가 석자입니다."
"네. 잘 알겠습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이 동화의 작가이신 미상님을 모시고 이번 좌담을 마무리해 보겠습니다. 작가님. 그간 잘 계셨습니까?"
"잘 지내지 못했다고 하는 편이 솔직하겠죠. 사방에서 다 불만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출판사에서는 요즘 누가 전래 동화를 읽냐면서 절판을 하자고 합니다. 아니면 쇼츠로 만드는 것이 훨씬 이득이라고 하면서요. 또 엄마들이 얼마나 바쁩니까? 더불어 간혹이나마 엄마가 아이의 머리맡에서 책을 읽어 줄 때마다 등장해야 하는 배우들도 아우성입니다. 더군다나 하늘나라에서는 불법 이민, 취업 청탁이라며 법적 대응을 검토 중이라고 언론에 흘리더군요. 그렇다고 제가 무슨 대책을 내놓겠습니까? 서서히 잊히는 한낱 이야기꾼인데요. 이제는 다 잊고 남은 생을 편안하게 지내고 싶을 뿐입니다."
"그래도 그간 고생한 대가로 편안한 삶을 영위하지 않으셨는지요?"
" 됐습니다. 다들 그런 오해를 하시더군요. '미상' 작가가 쓴 동화가 그렇게나 많으니 으리으리한 집에 살 것이라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동화는 예전에 힘을 잃었습니다. 호랑이는 그저 동물원에서 하품이나 하는 구경거리고 전락했고, 학원 다니느라 바쁜 아이들은 집에 돌아가자마자 자극적인 영상만 챙겨보다가 뻗어 버리고, 엄마들은 자신의 삶도 소중하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으며, 돈 되는 사업에 혈안인 회사들도 사정을 이해해줘야 합니다. 게다가 저는 판권 자체가 없습니다. 멍청하게도 저작권 등록을 안 해놓았거든요. 아무튼 저는 이제 동화에 대해 부정적이고 회의적입니다. 이런. 늦었습니다. 고양이 밥을 챙겨야 해서요. 아, 출연료도 필요 없습니다."
"오늘 "끼적끼적'에서는 동화 '해님 달님'과 관련한 이슈를 다루어 보았습니다. 이제는 국가적 차원에서 관심을 갖고 해결책을 강구해서 관련자들이 모두 상생할 수 있는 그런 사회를 만들어야 할 때입니다. 그럼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뭐야. 바쁜 사람 불러 놓고 매번 저런 식으로 마무리한다니까. 국가니 사회니 관심이 어쩌고 저쩌고."
"그러게요. 결론이 없어. 결론이."
"자기들 일이 아니니까 저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