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작가분들의 글을 읽다 보니, 오늘 문득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모두 저다마다의 무게를 지고,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몇 줄이라도 남기고 싶어 졌습니다.
작은 위로의 흔적을.
하지만 저는 아직도 의심합니다.
이런 말들이 정말 위로가 될까 하고요.
저 스스로도 확신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글을 적는 이유는 단 하나,
혹시라도 나와 같은 마음을 지닌 누군가에게
작은 울림이 닿을지도 모른다는 희망 때문입니다.
저는 신을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오히려 성경이나 불경을 대할 때, 제 마음은 한결 가볍습니다.
믿음이 없으니, 편견도 없이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자주 떠올리는 구절이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마태복음 11:28-30)
저는 이 말씀 가운데 첫 구절을 특히 좋아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말씀드렸듯이 저는 신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구절만큼은, 믿고 싶은 순간이 있습니다.
마지막 전철에 몸을 싣고,
집으로 가는 길이 끝없이 멀게만 느껴질 때,
불현듯 이 말이 떠오릅니다.
그 순간, 마치 누군가 제 짐을 대신 들어주겠다며
다정히 손을 내미는 것 같습니다.
만약 그런 신이 존재한다면,
저는 아마 이 말씀에 온전히 기대어 쉬었을 것입니다.
불교의 말씀에서도 저는 위로를 얻습니다.
“苦海無邊 回頭是岸”
“고통의 바다는 끝이 없지만, 고개를 돌리면 바로 저편(피안, 해탈·극락)입니다.”
저는 이 말에도 '고개를 돌리면'이라는 구절에 오래 머뭅니다.
그것은 단순한 몸짓이 아니라,
마음을 돌리고, 집착을 놓으라는 부드러운 권유로 들립니다.
하루 종일 업무에 치여 괴로움에만 매달리던 날,
문득 ‘이 일도 언젠가는 지나가리라’ 생각하며 마음을 놓아버린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때, 어깨가 가벼워졌습니다.
저에게는 바로 그 순간이 ‘고개를 돌린 순간’이었습니다.
극락은 먼 세계에 있지 않습니다.
정말로 고개만 돌리면 닿을 수 있는 가까운 자리.
그래서 저는 괴로울 때마다 이 구절을 떠올립니다.
마음을 조금만 바꾸어도 길이 열린다는 믿음이,
그 순간 저를 붙잡아 줍니다.
젊은 시절, 저는 푸시킨의 시를 자주 떠올렸습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지 말고 노여워하지 말지니,
지금의 고통은 잠시 머무를 뿐,
머지않아 기쁨의 날이 오리라.
마음은 언제나 미래를 향하나,
현재는 무겁고 견디기 어렵다.
그러나 모든 것은 흘러가리니,
오늘의 슬픔조차 훗날은 소중한 추억이 되리라.
푸시킨은 말합니다.
삶이 우리를 속이고 무너뜨릴 때조차, 그것을 영원히 붙들지 말라고.
지금의 슬픔은 언젠가 지나가고,
훗날에는 그 아픔조차 빛나는 흔적으로 남을 것이라고.
저는 바로 그 믿음에서 지금 이 순간을 버틸 힘을 얻습니다.
퇴근 무렵의 회의실을 떠올립니다.
모두가 지쳐 말없이 노트북만 바라보던 얼굴들.
저 역시 그 속에 있었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나만 힘든 게 아니라는 것을.
동료들 역시 가족을 위해, 생계를 위해,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습니다.
결국 우리 모두 같은 처지였습니다.
경쟁자가 아니라, 함께 견뎌야 하는 동료였던 것입니다.
삶은 즐겁기도 하지만, 힘겹기도 합니다.
그러나 나만 힘든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될 때,
마음은 조금 가벼워집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고 계신 당신도, 아마 그렇지 않을까요.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짐을 지고 있습니다.
저도 여전히 버티는 중입니다.
당신도 그렇겠지요.
우리 모두가 잠시라도 짐을 내려놓고, 숨을 고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