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그대로인 이유

by 홍종원

내가 옳다고 믿는 말이 두 가지 있다.
“세상엔 공짜가 없다.”
그리고 “고위험 고수익.”


큰 수익을 얻으려면 그만큼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사업이 그렇고, 투자가 그렇다.
하지만 모두가 사업이나 투자를 택하는 건 아니다.


많은 사람은 사업보다 직장을 택한다.
국가가 공인한 자격증을 따는 데 매달리기도 한다.
이 모든 건 위험을 낮추면서도 일정한 수익을 보장받으려는 전략이다.
우리가 지금의 일을 쉽게 놓지 못하는 것도 결국은 위험 때문이다.
새로운 선택은 언제나 불확실성을 동반하고, 그 불확실성이 바로 두려움이자 위험이다.




젊은 시절 나는 종종 의문을 품었다.
여행을 다니다가 산골짜기 외딴집을 보면 늘 생각했다.
“왜 저 집은 저곳에 홀로 떨어져 살까?”
“왜 더 나은 곳으로 이사하지 않을까?”


농사꾼.png


그땐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당장 떠났을 것 같았다.
하지만 살아오며 조금씩 알게 되었다.
그건 고집이 아니라, 위험 때문이었다.


만약 젊고 혼자인 사람이었다면,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사에 따르는 위험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를 키우고, 부모를 모시며 살아가는 부부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비록 땅은 작아도 대대로 지어온 농토가 있고, 최소한의 생계 수단이 있다면, 새로운 곳으로 옮기는 선택은 엄청난 위험이 된다.


낯선 땅에서 집을 마련하고, 생계 수단을 찾는 일.
그건 가족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모험일 수밖에 없다.




이처럼 위험의 크기는 상대적이다.
어떤 사람에겐 1천만 원의 손실이 단순한 타격이지만, 다른 사람에겐 삶 전체가 무너지는 사건일 수 있다.
위험을 감내할 수 있는 능력의 차이. 그것이 결국 선택의 차이를 만든다.


이사는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새로운 직장을 구하는 일,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 일도 똑같다.
누군가에겐 작은 위험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겐 삶 전체를 걸어야 할 만큼 큰 위험이 된다.


삼성이 반도체에 뛰어든 건 위험한 도전이었지만, 결국 한국 경제를 바꿔놓았다.
반대로, 무리하게 빚을 내어 코인 투자에 뛰어든 이들은 모든 걸 잃고 삶을 다시 일으키지 못했다.
성공과 실패 모두 위험에서 비롯된다.
이 두 사례는 “고위험 고수익”이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가장 잘 보여준다.


많은 책들은 이렇게 말한다.
“도전하라. 새로운 일을 시작하라. 그러면 성공할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은 위험의 크기와, 그것을 견딜 수 있는 능력을 먼저 따져 본 뒤에야 유효하다.


성공만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실패했을 때 다시 일어설 수 있는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선택도 있다.
그건 단순히 소극적인 태도가 아니라, 생존을 지키는 현명한 전략일 수 있다.


험지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가 그 자리를 지키는 것도 그렇다.
그건 무능이 아니라, 자신과 가족의 삶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다.
“현 상태 유지” 자체가 전략이 될 수 있다.


이 원리는 지금 우리의 삶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직장인은 안정된 월급과 연금을 선택한다.
청년 창업가는 빚을 내어 스타트업에 뛰어든다.
국가도 다르지 않다.


미국은 중국과의 패권 경쟁에서 위험을 감수하거나 회피하며 전략을 짠다.
한국 역시 안보와 경제에서 위험을 저울질한다.
개인의 선택에서 국가의 선택까지, 위험은 언제나 삶의 이면에 숨어 있다.




나는 믿는다.
사람들은 누구나 각자의 상황 속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도전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감당할 수 없는 위험 앞에서 신중한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주식이나 코인 투자도 다르지 않다.
수익의 가능성만 좇기 전에, 잃었을 때 내 삶을 다시 복구할 수 있는가를 먼저 따져야 한다.
그것이 위험을 직시하는 일이다.


결국 질문은 단순하다.
나는 지금 어떤 위험까지 감당할 수 있는가?
그리고 무엇을 지키기 위해 그 위험을 선택하거나 피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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