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금융위기를 본 사람, 누리엘 루비니

by 홍종원

2006년 가을, 뉴욕 맨해튼의 한 콘퍼런스 홀.
샹들리에 불빛이 반짝이고, 와인 잔이 부딪히는 소리가 가볍게 흘렀다.


그날의 공기는 낙관으로 가득 차 있었다.
부동산은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주식 차트는 매일 정점을 새로 썼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자신감과 안도가 동시에 묻어 있었다.


“미국 경제는 여전히 견고하다.”
앞선 연사들의 진단은 한결같았다.
금융시장은 창의적인 상품들 덕분에 리스크가 분산되어 있다는 말도 이어졌다.
청중은 고개를 끄덕였고, 어떤 이는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그때 마지막 연사가 호명되었다.
누리엘 루비니.
월가에서는 이미 “닥터 둠(Dr. Doom, 파멸 박사)”이라 불리던 인물.
너무 비관적이라는 이유로 자주 조롱을 받던 사람이었다.


누리엘 루비니.png


그는 두툼한 서류 뭉치를 들고 연단에 올랐다.
표정은 굳어 있었고, 목소리는 단호했다.


“곧 미국 주택시장이 붕괴할 것입니다.
은행은 줄줄이 무너지고, 세계 금융은 연쇄적으로 흔들릴 것입니다.”


홀 안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뒤편에서 작은 웃음이 새어 나왔다.
팔짱을 낀 채 고개를 저은 사람도 있었다.
낙관의 공기를 들이마시던 이들에게 그의 목소리는 한겨울 바람처럼 차갑게 스며들었다.


그러나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루비니는 자신이 본 균열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루비니의 말이 단순한 비관론에 그치지 않았던 이유는,
그가 본 것이 단순한 집값 하락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미국 가계의 소득은 오랫동안 정체되어 있었다.
그 사이 신용도가 낮은 사람들에게까지 주택담보대출,
즉 서브프라임 대출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은행들은 이 위험한 대출을 다시 쪼개 복잡한 파생상품으로 만들었고,
그 상품은 전 세계 금융기관에 흩어졌다.


겉으로는 위험이 분산된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취약성이 은폐되고 오히려 응축되고 있었다.
루비니가 본 것은 바로 이 구조였다.


문제는 집값이 떨어지는 일이 아니었다.
하나의 도미노가 무너지면 금융 시스템 전체가 연쇄적으로 흔들릴 수밖에 없는 불안정한 연결망.
그것이 그의 눈에 보였다.


2008년 금융위기가 실제로 터졌을 때,
사람들은 “루비니가 예언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예언자가 아니었다.
그는 단지 현재의 구조를 누구보다 냉정하게 읽어낸 것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호황에 도취해 있을 때,
그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 호황은 무엇 위에 세워져 있는가?”


그 질문을 따라가며
가계의 빚, 은행의 파생상품,
그리고 그것이 얽혀 만들어낸 글로벌 자본의 연쇄를 드러냈다.


위기는 결국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뉴욕에서 시작된 불씨는 유럽의 은행으로 번졌다.
아시아의 수출국들은 수요 급감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아이슬란드와 그리스 같은 작은 나라부터,
독일과 영국 같은 거대 경제까지 흔들렸다.
각국 정부는 부랴부랴 구제금융과 긴급 대책을 내놓아야 했다.


루비니가 본 것은 미국 내부의 균열만이 아니었다.
그는 그것이 전 세계를 흔들 수밖에 없는 구조임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이 있다.
루비니의 통찰은 “맞았기 때문에” 가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당대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그 구조와 근거를 치밀하게 제시했기 때문에 이미 가치가 있었다.


만약 우연히 다른 요인들이 개입해 위기가 늦춰지거나,
규모가 완화되었더라도 그의 분석은 여전히 의미가 있었다.
그는 당시 존재했던 균열을 정확히 짚어냈기 때문이다.


현실이 그의 주장을 증명했기에 더 주목받았지만,
설령 결과가 달랐더라도 그의 시선은 통찰로 남았을 것이다.
통찰의 본질이 결과가 아니라 근거임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였다.


이 이야기는 통찰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보여준다.
통찰은 먼 미래를 예언하는 신비한 능력이 아니다.


통찰은 현재의 겉모습 뒤에서
보이지 않는 구조를 읽어내는 눈이다.
그리고 그 구조를 본 사람만이,
아직 드러나지 않은 위기에 대비할 수 있다.


2006년 강연장에서 그의 말을 비웃던 사람들은
2년 뒤, 뉴욕 증시 붕괴와 런던·베를린·도쿄까지 흔들린 충격 속에서
뒤늦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루비니는 예언자가 아니었다.
그저 다른 이들이 외면한 균열을 끝까지 바라본 사람이었다.


그것이 바로, 통찰의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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