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육지만 본 세상, 바다를 본 이순신

by 홍종원

1592년, 임진왜란의 불길이 조선을 삼켰다.
왜군은 부산에 상륙하자마자 파죽지세로 북상했다.
한양은 점령당했고, 조정은 평양으로 쫓겨갔다.
육지에서 맞서는 조선군은 연전연패였다.


모두가 “나라가 끝났다”라고 절망하던 그때,
한 사람은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순신이었다.


그는 단순히 눈앞의 싸움만 고민하지 않았다.
적이 어떻게 나라 깊숙이 들어올 수 있는가,
그 구조 자체를 파악하려 했다.


답은 명확했다.
일본군의 군량은 바다를 통해 들어온다.
바다를 내주면, 육지에서 아무리 이겨도 결국 밀릴 수밖에 없었다.


『난중일기』에는 그의 고집이 남아 있다.
“수군은 조선을 지탱하는 기둥이니, 바다를 지키지 못하면 나라가 무너질 것이다.”


그는 누구보다 선명하게 구조를 읽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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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세 사람들은 한산도·명량·노량의 삼대 대첩을 떠올린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의 가장 큰 공은 일본군의 보급선을 차단한 데 있었다.


육로 보급은 느렸다.
산맥을 넘어야 했고, 강을 건너야 했으며, 수많은 인력이 필요했다.
마차와 인부를 동원해도 군량은 조금씩밖에 나를 수 없었다.


그러나 바다는 달랐다.
배 한 척이면 수천 인분의 군량을 실어 날랐다.
빠르고, 안전하고, 대규모였다.
한 번 바닷길이 열리면, 육지의 승리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선조와 조정 대신들은 이 차이를 보지 못했다.
그들은 전쟁은 땅에서만 벌어진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순신은 달랐다.
그는 바다가 곧 전쟁의 성패를 가르는 길임을 꿰뚫었다.


일본군의 전략은 단순했다.
남해를 돌아 서해로 진출해,
황해를 통해 군량과 병력을 한양과 평양까지 실어 나르는 것.
만약 그 길이 열렸다면, 조선은 끝내 무너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순신은 그 길을 막았다.
한산도 대첩, 명량 해전, 노량 해전은 단순한 승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일본군의 바다 보급망을 끊어낸 싸움이었다.


그는 적의 전략을 간파했다.
그 구조를 차단해야 한다는 본질을 이해했다.
그리고 끝내 그것을 실천했다.


다른 장수와 신하들이 육지만 보았을 때,
그는 바다를 보았다.
다른 이들이 눈앞의 전공에 매달릴 때,
그는 전쟁의 구조를 읽었다.


사람들은 이순신을 ‘해전의 신’이라 부른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는 대전략가였고 동시에 기본에 충실한 전술가였다.


그는 항상 적은 병력으로 다수를 상대해야 했다.
그래서 좁은 수로를 택했다.
많은 적이 한꺼번에 몰려오지 못하도록,
지형을 이용해 수적 열세를 줄였다.


그는 지형으로 유인해 싸움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들었다.
『난중일기』에 기록된 그의 마음은 절박하다.
“수군이 한번 패하면 다시는 바다를 지킬 수 없다. 신중히, 또 신중히 싸워야 한다.”


그는 피눈물 나는 신중함으로 싸웠다.
한 번 지면 조선 수군이 통째로 사라질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그는 고립되어 있었다.
조정의 문신들은 그를 시기했고,
원균 같은 장수들은 그를 모함했다.
심지어 선조조차 그를 옥에 가두었다.


그럼에도 그는 꺾이지 않았다.
그의 통찰은 단순한 깨달음이 아니었다.
실행된 통찰이었다.


결과는 분명했다.
일본군은 한양에서 더 이상 북진하지 못했다.
보급이 끊긴 군대는 결국 한계에 부딪혔고,
전쟁은 장기전으로 바뀌었다.


이순신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통찰의 본질을 가르쳐준다.
통찰은 단순한 전술이나 전공이 아니다.
통찰은 구조를 읽는 눈이다.
그리고 그 구조가 열어 놓은 길을 막아내는,
끝까지 실천하는 태도다.


『난중일기』 속 한 구절은 지금도 울림을 남긴다.
“싸움에 이기고 지는 것은 하늘에 달렸으나, 나라를 지키는 길은 내가 버릴 수 없다.”


그는 하늘의 운명을 논하지 않았다.
대신 인간이 손으로 붙잡을 수 있는 구조를 지켜냈다.
그것이야말로 이순신의 위대한 통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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