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불길 위의 동북아, 투키디데스 함정

by 홍종원
그레이엄 앨리슨.png


하버드 강의실.
불이 어두워지고 스크린에 지도가 떠올랐다.
대만해협, 동중국해, 한반도, 일본 남쪽에 붉은 점들이 차례로 박혔다.


그레이엄 앨리슨은 학생들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역사는 신흥 강대국이 떠오를 때 전쟁을 자주 보았습니다.
기존 패권국의 불안과 신흥국의 자신감이 맞부딪칠 때, 작은 불씨가 큰 불이 되지요.”


순간 교실은 고요해졌다.
그의 말은 무역분쟁이나 관세 갈등 같은 단기 뉴스가 아니었다.
그는 구조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권력의 판이 흔들릴 때 생기는, 피할 수 없는 압력 말이다.


그는 통계를 보여주었다.
지난 500년 동안 16번의 패권 교체 중 12번이 전쟁으로 이어졌다.
많은 이들이 ‘운명’을 읽었다고 했지만, 앨리슨은 단호히 말했다.
“이건 운명이 아니라, 경보입니다.”




그가 주목한 무대는 동북아였다.
미국은 군사 동맹과 금융·기술 규범으로 지역을 묶는다.
중국은 해군력과 경제, 공급망을 앞세워 영향권을 넓힌다.
대만해협과 동중국해, 한반도는 긴장의 선으로 서로 이어져 있다.


이 지역이 특히 위험한 이유는 분명했다.
대만해협과 대한해협 같은 병목 지점은 에너지와 원자재, 해저 케이블까지 흔든다.
동맹 구조는 하나의 충돌이 곧 여러 나라를 움직이게 만든다.
반도체 공급망은 대만과 한국에 집중돼 있고, 전쟁은 칩을 곧장 겨눈다.
그리고 북한은 언제나 위기 속에서 기회를 찾는다.


앨리슨은 한국과 일본, 대만을 “강제로 선택을 강요당하는 위치”라 했다.


한국은 안보를 미국에, 무역을 중국에 의존한다.
사드(THAAD) 배치 때 중국의 경제 보복을 이미 겪었다.
대만해협에 위기가 터지면 미군은 한국의 기지와 보급로를 요구할 것이다.
말로는 중립을 선언할 수 있지만, 동맹의 운영은 결국 선택을 강제한다.


일본은 더 직접적이다.
미·일 안보조약은 대만 유사시 일본의 역할을 확대한다.
오키나와와 남서도서는 대만과 너무 가깝다.
주일미군 기지와 집단자위권은 일본을 단숨에 전장의 일부로 끌어들인다.


대만은 말할 것도 없다.
전선 그 자체다.
TSMC 같은 최첨단 반도체 공장은 전략적 표적이 된다.
전쟁이 아니어도 봉쇄와 제재만으로 세계 경제는 크게 흔들린다.


북한은 또 다른 변수다.
다른 전선이 분주할 때 미사일을 쏘고, 핵실험을 강행한다.
위기를 다층적으로 확대시키며, 동북아 전체를 더욱 불안정하게 만든다.


앨리슨이 던진 질문은 단순했다.
“중간은 가능한가?”


그는 곧바로 답했다.
“위기 순간, 중간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만해협에서 군용기가 충돌한다고 가정해 보자.
해상 검문검색이 강화되고, 보험사는 항로를 위험 지역으로 판정한다.
원유와 식량 운송비는 순식간에 폭등한다.
미국은 수출 통제를 강화하고, 중국은 희토류를 막는다.
일본의 미군 기지에서 출격이 늘고, 한국에는 기지 사용과 제재 동참을 요구한다.
그 와중에 북한은 미사일을 발사한다.


전쟁은 총소리만으로 시작되지 않는다.
정치와 금융, 해상과 사이버까지 동시에 흔들린다.
이 연결성 때문에 동북아 전체가 단숨에 흔들린다.


앨리슨은 전쟁을 필연이라 하지 않는다.
그는 말한다.
“전쟁은 사건이 아니라 구조에서 옵니다.
따라서 구조를 관리하는 기술이야말로 평화를 지키는 기술입니다.”


핫라인.
위기관리 합의.
군사 활동의 규칙.
경제 디커플링의 속도 조절.
그가 제안한 방파제들이다.


오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단순하다.
동북아의 위기는 먼 나라 뉴스가 아니다.
불씨는 이미 우리의 발밑에 놓여 있다.


경보를 들을 것인가.
아니면 외면하다, 언젠가 불길 속에서 눈을 뜰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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