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는 마치 알파벳 같다. 그 자체로는 아무 의미도 없지만, 특정한 배열에 따라 전혀 다른 생명 형태를 만들어낸다. 이 단순한 분자들이 조합만 바뀌었을 뿐인데, 박테리아가 되고 나무가 되고 인간이 된다. 어째서 자연은 이토록 많은 조합을 시도해 온 것일까?
자연은 효율적인 길만 선택하지 않았다. 오히려 불필요해 보이는 구조와 한계투성이의 존재들까지도 무수히 만들어냈다. 실제로, 짧은 시간만 존재했다가 사라진 기이한 생명체들도 많았다. 5억 년 전 바다에 살던 하루키제니아(Hallucigenia)나 오파비니아(Opabinia) 같은 생물들은 지금 기준으로 보면 어딘가 어설픈 구조를 갖고 있었고, 결국 후손 없이 사라졌다. 또, 오늘날에도 그런 흔적은 남아 있다. 예를 들어, 인간의 눈에는 맹점이 있고, 기린의 신경은 비효율적으로 심장을 크게 돌아 후두로 이어진다. 이런 구조들은 자연이 가장 효율적인 설계를 추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마치 자연은 최적화보다 가능성 자체를 향해 열린 실험실처럼 움직였다.
이 반복은 단순히 생존을 위한 게 아니었던 듯하다. 유전자가 하는 일은, 살아남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전자는 변화 자체를 욕망하는 정보 덩어리처럼 보인다. 생명이란 어쩌면 ‘지속’보다도 ‘변형’을 더 근본적인 원리로 삼고 있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신의 의도는 완성된 설계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설계를 시도해 보는 것이었을까? 완전함보다 다양함을, 정답보다 가능성을 우선한 창조자의 방식이 이 안에 숨어 있는 건 아닐까? 우리는 그 실험의 수많은 결과 중 하나일 뿐이다.
우리는 가끔 인간의 지능이 진화의 끝일지도 모른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유전자의 입장에서는 인간조차도 뿐 단 하나의 조합일 이다. 자연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유전자는 여전히 묻고 있다.
“그다음엔 어떤 조합이 가능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