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가슴속에 사표 하나쯤은 품고 다닌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회사 생활이란 본래 가혹한 것이다.
실패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할 때가 있다.
때로는 잘못된 방향을 바로 잡으려 했지만,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 실망에 떠날 때도 있다.
때로는 매일 같은 루틴을 긴 세월 동안 반복하다 보면 견디기 힘들 때도 있다.
열심히 했지만 경쟁에서 밀려 결국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떠나야 하는 순간도 찾아온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날'을 위해, 가슴속에 사표 한 장을 늘 숨겨두고 살아간다.
하지만 나는 그 자리에 사표가 아닌 칼을 품고 살아왔다.
회사를 떠나기 위한 종이가 아니라, 끝까지 버티기 위한 마지막 수단.
말 그대로, 죽을 각오로 살아가기 위한 칼이다.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다.
집안이 넉넉하지 않아 큰 도움을 받긴 어려웠다.
집이 너무 멀어 고등학교 이후로 줄곧 타향살이를 해야 했다.
월세방 하나 얻어 홀로 시작한 회사 생활.
아침마다, 주말마다 따뜻한 밥 한 끼 챙겨줄 사람도 없었다.
건강도 썩 좋진 않았다.
체력은 약했고, 잔병치레는 잦았다.
장사 같은 건 꿈에도 꾼 적이 없다.
그럴 만한 돈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회사를 다녀야 했다.
그것이 나의 목숨 줄이었고, 나의 생존 방식이었다.
회사 생활로 겨우 월세를 내고,
생활비와 통신비, 세금을 지출하고 나면 남는 건 거의 없었다.
그래도 회사에 나가면 먹고 자고 입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다.
그게 전부이긴 했지만,
아무것도 없던 내게는
그것만으로도 사회에 나와 시작할 수 있는 훌륭한 '출발점'이라 생각했다.
나는 회사를 떠날 수 없었다.
아니, 떠나는 순간 생존이 끝나는 인생이었다.
그래서 사표 대신 칼을 가슴에 품었다.
죽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서.
나에게는 일에 대한 포기는 없다.
능력이 뛰어난 것도, 배움이 많은 것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매일 지하철 막차를 타고 퇴근하면서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텼다.
내겐 포기는 곧 죽음이었다.
이건 아주 오래전, 내가 사회 초년생이었을 때의 이야기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나만 그랬던 건 아니었다.
그 시절을 지나온 모든 초년생들, 지금의 신입사원들도.
처음부터 넉넉한 사람은 없었다.
대부분이 월세에서 시작했고,
전세로 옮기고,
대출을 받아 겨우 집을 마련하고, 결혼도 그 안에서 해냈다.
시간이 흐르면서, 다들 회사에서 번 돈으로 조금씩 그 단계를 밟아나갔다.
물론 나도 그랬다.
그래서 나는 가끔 생각한다.
그들도, 어쩌면,
사표가 아니라 칼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이들일지도 모른다.
시간이 흘렀지만, 나는 여전히 그 칼을 가슴속에 품고 있다.
왜일까?
가끔 일을 하다 주변을 둘러보면, 나와 같은 칼을 품고 사는 동료를 알아볼 때가 있다.
칼을 품고 사는 사람은 서로를 알아보는 걸까.
살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나 자신의 생존이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그렇게 살아가게 된다.
지난날의 부모님처럼.
어떤 이는 일과 삶의 균형을 찾기 위해 애쓴다.
운동을 하고, 건강을 챙기며 자기 속도를 조절하려 한다.
하지만 나는 항상 없는 힘까지 짜내야 했다.
그 때문에 예전부터 흡연과 자판기 커피, 때로는 술에 의지했다.
그것이 습관처럼 박혀 있다.
한 번쯤 심장마비로 쓰러졌어도 이상하지 않을 삶이었다.
그럼에도 아직 살아 있다.
천운에 가까운 일이다.
회사 어느 선배의 말이 떠오른다.
"고속도로 퇴근길에, 그냥 심장마비가 와서 죽고 싶더라."
그땐 잘 몰랐지만,
지금은 그 말이 이해되는 나이가 되었다.
출퇴근 버스 안,
너무 피곤해 눈이 저절로 잠긴다.
그렇게 스르르 잠들 때면, 문득 이런 생각을 한곤 한다.
'그냥, 다시는 안 깼으면 좋겠다.'
하지만 언제나 눈은 떠진다.
그렇게 오랜 시간, "이러다 죽겠지"하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동안의 모든 것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결국 오랜 시간 다닌 직장이란 조직 생활을 내려놓았다.
미래에 대한 큰 계획도, 이루고 싶은 목표도 없었다.
그냥 쉬고 싶었다.
그리고 더 이상 조직 생활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사람들이 사는 이유와 선택은 제 각각이다.
나도 그저, 내 나름의 방식으로 여기까지 살아온 것뿐이다.
누구나 공통적인 건, 자신의 인생을 열심히 살아낸다는 점이다.
때로는 넘어진 채 일어나지 못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그것 역시, 최선을 다해 살아온 삶이라 믿는다.
넘어졌다고 다 일어날 필요는 없다.
어떤 이는 너무 빨리, 너무 열심히 달리다가 넘어져 크게 다쳤고,
어떤 이는 너무 오래 달려서 일어날 힘조차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그 사람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것임에는 틀림없다.
최선을 다한 그런 사람은 좀 쉬어도 되지 않을까?
누군가의 대답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선택하라. 그리고 책임을 져라. 그것이 인생이다."라는 어느 철학자의 말을 생각한다.
나는 그 말을 오래도록 가슴에 품고 살아왔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가슴에 독한 마음을 품고 사는 삶은,
결국 몸과 마음을 좀먹고, 언젠가는 사람을 무너뜨린다는 것을.
그러니 제발, 그런 삶을 살지 않기를.
그럴 수 없다면, 부디 그 선택이 조금은 덜 아프기를.
그 책임이 덜 외롭기를.
조용히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