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주 가끔, 일찍 깨는 날이 있다.
그날도 눈을 뜨자마자 벽시계를 바라봤다.
바늘은 다섯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자명종은 아직 울리지 않았다.
그러나 나의 몸은 이미 오늘을 시작하고 있었다.
몸에 밴 듯, 나는 늘 눈이 떠지는 시간이 곧 출근 시간이다.
머뭇거리면 다시 눕게 될 테니까,
곧장 일어났다.
욕실의 불은 켜고 물을 틀었다.
나는 늘 아침을 샤워로 시작한다.
세수로는 뭔가 부족하다.
샤워는 나에게 각성의식 같은 것이다.
물이 흐르고, 어깨로 온기가 스며든다.
등줄기를 따라 흘러내리는 물줄기 아래서 몸이 서서히 현실로 귀환한다.
아주 미세한 순간들이 깨어난다.
눈꺼풀, 손가락 관절, 가슴 근육.
내 안의 감각들이 다시 작동하기 시작하는 순간.
그게 나의 하루의 시작이다.
양치질을 하며 창문을 열었다.
아직 어둡겠거니 싶었는데, 밖은 이미 훤하다.
여름의 새벽은 낮보다 더 밝다.
5시 반, 집을 나선다.
샤워를 마친 몸은 묘하게 가볍다.
피로가 걷히고, 피부엔 정돈된 기운이 감돈다.
움츠렸던 어깨와 목이 자연스럽게 퍼지고,
팔과 다리는 오랜만에 제 호흡을 찾은 듯 가볍다.
몸이 깨어났다는 느낌,
조금 과장하자면,
다시 조율된 악기처럼 모든 감각이 정돈된 기분이다.
이른 아침 공기는 그런 나를 부드럽게 감싸며 조용히 하루를 밀어준다.
지하철역까지 도보로 약 15분.
늘 걷는 길이지만,
이른 여름 아침의 골목은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도시는 마치 숨을 고르듯, 그 자체로 조용히 가라앉아 있다.
바람도 말을 아끼는 듯 조용하고,
공기는 놀라울 만큼 딱 좋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그러나 명확한 감각으로 폐 속을 맑게 해주는 온도.
이른 아침의 공기는,
온몸을 깨끗하게 쓸고 지나가는 투명한 손길 같다.
길가의 나무들은
이 시간에만 자신들의 존재를 또렷이 드러내는 것처럼 보인다.
햇빛은 아직 낮처럼 강하지 않고,
잎사귀는 정면에서 떨어지는 부드러운 빛을 받아
맑고 선명하게 빛난다.
한낮의 잎사귀는 종종 무거워 보인다.
태양 아래 축 처지고, 숨죽인 듯 가만히 매달려 있지만,
이른 아침의 잎들은 다르다.
어디 하나 처짐 없이 반듯하고,
푸른 색감이 더 짙고 또렷하다.
그 푸르름엔 밤새 충분히 쉬어낸 생기가 스며 있다.
마치 하루 중
지금이야말로 나무가 가장 나무다워지는 순간처럼 보인다.
사람은 거의 없다.
아주 멀리서 간간이 발소리가 들릴 뿐.
그리고 어김없이 마주치는 고양이 한 마리.
차 밑에서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밀어 내가 누구인지 잠시 살핀다.
이 고요함,
이 기온,
이 햇살.
그 어느 것 하나 과하지 않고,
그 어느 것 하나 부족하지 않다.
나는 오늘도 같은 길을 걷고 있지만,
이 아침만은
내게 처음 걷는 길처럼 낯설게 다가온다.
골목을 벗어나 대로로 접어들면
세상이 갑자기 깨어나는 소리를 낸다.
트럭, 신호등, 자동문이 열리고 닫히는 부드러운 소리,
그리고 지하철역을 향해 무표정하게 걸어가는 사람들.
놀라운 건,
이른 시간인데도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다.
누군가는 일찍 시작하기 위해,
누군가는 밤을 지새운 채 하루를 마무리하기 위해,
그리고 누군가는 자기만의 속도로 이 하루를 맞이하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지하철역에 도착하면 이미 몇 대의 열차가 지나갔다.
플랫폼엔 예상보다 사람이 많다.
자리가 없어 서서 가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괜찮다.
오늘 나는 이미 하루를 조금 일찍, 조금 다르게 시작했기 때문이다.
회사에 도착하면
커피 향이 먼저 반긴다.
익숙한 자리에 앉아 메일을 열고,
조용히 하루의 루틴을 시작한다.
그날의 업무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단 하나,
그날 아침은 조금 달랐다.
나는 아침 햇살을 받는 나무들,
잔잔한 공기,
고요한 골목,
그리고 느린 호흡을 가진 시간의 결을 몸으로 먼저 지나왔다.
그렇게 여름날의, 아주 가끔 있는 이른 아침 출근은
매일 같은 루틴을 반복하는 나에게
조금 색다른 하루를 선물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