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를 주로 해 실패한 항우

일잘러의 힘, 정치력(원고)-파괴에서 물러서기 - 파괴를 주로 한 항우

by 오치규

모든 파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창조적 파괴’를 통한 혁신이 자본주의 경제의 핵심원리라는 주장은 이미 상식입니다. 하지만 새로운 창조가 수반되지 않는다면 파괴는 피해야 합니다. 파괴는 쉽고 건설은 어렵기 때문입니다.


<사기>에서 대표적인 ‘파괴의 왕’은 항우라 할 수 있습니다. 항우는 건설하고 보존하기보다는 파괴하기를 즐긴 사람이었습니다.


유방은 함양에 먼저 당도해 함양의 모든 것을 보존했습니다. 하지만 후에 도착한 항우는 함양을 도륙했습니다. 진나라의 왕자 자영을 죽였고 궁실을 불태워 석 달 동안이나 불이 꺼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항우는 재화와 보물 및 부녀자들을 차지해 동쪽으로 돌아갔습니다.


항우는 땅이 비옥하고 방어에 좋으니 관중에 머물라고 사람들이 권하자, "진의 궁실이 이미 모두 불에 다 타버렸고, 또 마음속으로 고향이 그리워서 동쪽으로 돌아가려고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불을 지른 것이었습니다. “부귀한 뒤에 고향에 돌아가지 아니하는 것은 비단 옷을 입고 밤길을 가는 것과 같으니 누가 그것을 알아주리오?”라는 항우의 말에, “사람들이 말하기를 초 땅의 사람은 목후(沐猴, 원숭이)가 관冠을 쓴 격일뿐이라고 하더니, 과연 그렇구나!”라고 어떤 사람이 한탄하자 항우는 그를 삶아죽이고 말았습니다. 항우는 파괴와 살육을 주로 한 사람이었습니다.


항우는 제나라의 전영田榮과 전쟁을 할 때 백성들이 전영을 잡아 죽였지만 제나라의 성곽과 집들을 모두 불살라 버렸습니다. 그리고 항복한 전영의 군졸들을 모두 생매장해 버렸고 노약자와 부녀자들을 포로로 삼고 제나라의 북해北海까지 토벌해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파괴했습니다. 이런 파괴는 반항을 불러 일으켜 전영의 동생 전횡田橫이 반란을 일으키니 결국 항우는 함락시킬 수 없었습니다. 파괴가 실패를 불러 온 것이었습니다.


팽월이 반란을 일으킨 양梁 땅의 외황外黃을 항우가 정벌했을 때에도 15세 이상의 남자들을 모두 생매장하려고 했습니다. 이에 외항 현령의 어느 문객의 13세된 아들이, “팽월이 강압적으로 외황을 위협하니 외황 사람들은 두려워 짐짓 우선 항복하고는 대왕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대왕께서 오셔서는 또 모두 생매장시키려고 하시니 백성들이 어찌 기탁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겠습니까? 여기로부터 동쪽으로 양梁 지역의 10여 성이 모두 두려워서 항복하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했고 항우는 이를 받아들여 사람들을 죽이지 않고 사면해 줍니다. 그러자 동쪽으로 수양睢陽에 이르기까지 그 소식을 듣고, 모두 다투어 항우에게 투항합니다.


비록 항우가 13세짜리 어린 아이의 말을 받아들였지만 그는 그 아이만도 못한 자였습니다. 항우는 형양성을 차지한 후 유방의 어사대부御史大夫 주가周苛를 회유하려 했지만 반항하자 또한 그를 삶아 죽여 버렸습니다.


파괴와 살육을 주로 한 항우는 결국 인심을 얻지 못했고 천하는 유방에게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비록 전쟁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승리했을 때에 파괴보다는 보존하고 건설하는 방법으로 했더라면 유방은 항우의 적수가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기존의 것을 파괴하고 새로운 것을 기획하는 사람들은 항우의 사례를 참고해야 합니다. 문제가 있다면 잘 보수하고 보완해서 쓸 수 있는지를 먼저 고려해 봐야 합니다. 파괴는 쉽고 새로운 제도와 관행을 건설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이며 많은 반감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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