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린
어린 시절부터 동물 프로그램을 보면 기린은 늘 빠지지 않고 등장하곤 했다.
사바나의 노을빛 속에서 천천히 걸음을 옮기던 그 기린들은, 어린 내 눈에는 마치 다른 시간대에 사는 존재처럼 보였다. 다른 동물들이 빠르게 달리고 서로 부딪히며 경쟁하는 동안에도, 기린만은 고요한 숲기둥처럼 묵묵하게 걸음을 이어갔다. 그 긴 목이 흔들릴 때마다 먼 곳의 바람까지 함께 움직이는 것 같아, 나는 화면 앞에서 한참을 멈춰 서곤 했다.
기린의 목은 나에게 늘 신기한 신체였다. 한없이 길기만 한 것이 아니라, 길기 때문에 더 우아해 보였다. 어린 나는 기린을 볼 때마다 ‘저 긴 목이 하루 동안 얼마나 많은 하늘을 바라볼까’, ‘저 높은 곳에서 세상을 어떻게 내려다볼까’ 같은 쓸데없는 상상을 하며 혼자 피식 웃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 스스로도 모르게 기린을 따라 고개를 길게 들어 올리곤 했다. 천장을 바라보며 기지개를 쭉 켤 때면, 내 몸도 잠시나마 조금은 더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이 버릇은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어른이 된 지금, 동물원을 지나거나 우연히 SNS에서 기린 영상을 보게 될 때면, 나는 무의식중에 어깨를 풀고 목을 길게 빼며 기린의 자세를 흉내 낸다. 이상하게도 그 순간에만큼은 목과 어깨의 뻐근함이 스르르 풀린다. 하루 종일 굳어 있던 긴장도, 걱정도, 잠깐은 기린의 긴 목을 따라 멀리 흩어지는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기린은 내게 단순한 동물이 아니다. 말도 통하지 않고, 실제로는 가까이 본 적도 거의 없지만, 오래전부터 내 일상의 작은 회복을 도와주는 존재였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기린만큼 긴 목을 갖진 못했지만, 기린을 볼 때마다 내 몸은 조금 더 열린 방향으로 늘어나고, 내 마음은 조금 더 시원한 곳을 향해 기지개를 켜게 된다.
어쩌면 기린이 나에게 가르쳐준 건 단순한 ‘스트레칭’ 같은 게 아니라, 잠깐이라도 하늘을 올려다보는 자세였는지도 모른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는 그 짧은 순간이야말로, 어린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를 은근히 이어주는 다리 같은 역할을 해왔다. 바쁜 하루 속에서도, 마음이 조급해질 때에도, 나는 문득 떠오르는 기린의 모습을 따라 목을 쭉 뻗고 하늘을 바라본다. 그러면 내 안의 어린아이가 살짝 고개를 내밀고, 잠깐이라도 숨을 크게 쉬어보라고, 조금 더 천천히 걸어보라고 말해주는 것만 같다.
그런 의미에서, 기린은 오랫동안 나 모르게 나를 도와준 조용한 친구다. 스쳐 지나가는 화면 속의 존재였지만, 매번 내 몸의 긴장을 풀어주고, 나를 다시 위로 들어 올려주던 고마운 영감이기도 하다. 나는 기린의 목을 가질 수는 없지만, 기린을 바라보며 얻는 그 작은 여유와 시원함은 어쩌면 누구보다 오랫동안 내 곁에 남아 있었던 선물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