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의 흑백사진이 말해주는 것들
사진 앨범을 정리하다 우연히 발견한 한 장의 가족사진. 딸 셋, 아들 둘, 그리고 부모까지 일곱 명이 모두 함께 찍은 사진은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 흑백으로 처리된 이 사진이 1960년대 내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해서 더욱 애정이 간다.
한여름이었던 것 같다. 테이블 한가운데 놓인 빙수 한 그릇. 그 주위로 일곱 개의 숟가락이 놓여있고, 모든 시선이 그 한 그릇에 집중되어 있다. 첫째 딸과 막내아들의 나이 차이가 9살인 우리 집에서 다섯 아이가 한자리에 모인 시간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사진을 보고서야 깨달았다. 아, 우리에게도 이런 시간이 있었구나. 좋았던 순간보다 힘들고 어려웠던 기억들만 남아있던 내 머릿속을 다시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캐나다 하늘을 그리워하던 딸아이
"엄마, 하늘이 맑네~ 캐나다 하늘이 생각나네, 캐나다 가고 싶다"
버스 정류장까지 함께 걷던 큰딸이 8월 말 가을 초입의 하늘을 보며 한 말이다. 그 뒤로 나는 중학교 1학년 큰딸과 초등학교 5학년 둘째 딸의 캐나다행을 마음속에 그려보기만 했다.
며칠 뒤 우연히 들은 라디오에서 어떤 목사님이 유학생을 모집한다는 인터뷰가 나왔다. 딸아이 둘을 데리고 강남의 유학 사무실을 찾았고, 설명회를 들었다. 그리고 신속하게 수속을 마쳐 9월 10일 전에 한국을 떠났다. 3년간의 유학 생활이 시작된 거였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모였다 흩어졌다를 반복했다. 3년 동안 두 딸이 없는 사이, 그 아이들이 돌아올 때쯤엔 셋째, 넷째가 고등학생이 되어 기숙사 생활을 시작했다. 큰딸은 독립했다가 잠시 들어왔다 나가고, 둘째는 대학 졸업 후 강남 직장 근처로 떠났다.
셋째는 해병대 복무를 마치고 캐나다 워킹홀리데이를 간다며 밴쿠버로 떠났는데, 잠시 잠깐이라 생각했던 그곳 생활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목수 일을 하다 지금은 밴쿠버 시내 상하수도 관리 회사에 취직했다고 한다. 대학으로 돌아올 생각은 없어 보인다.
넷째는 간호학과 특성상 학교 앞에서 자취하다 현재는 휴학으로 집에 있고, 막내아들은 형이 다녀온 해병대가 좋아 보였는지 올 4월에 입대했다.
결국 지금 집에 남은 건 큰딸과 막내딸, 그리고 부모뿐이다.
서랍 속에 숨겨둔 녹은 아이스크림
"엄마, 친구 집에 가면요 먹을 것을 쌓아 놓고 먹지 않고 있어요."
큰아들이 초등학교 3학년 때 한 말이다. 빙수 사진을 보니 그 말이 금세 이해된다. 우리 집 아이들은 늘 먹을 것 앞에서 집중해야 했다. 순간의 방심이 자신의 몫을 잃는 결과로 이어졌으니까. 친구 집의 여유로운 간식 풍경이 신기했을 거다.
막내딸이 5살 때였다. 청소를 하다 발견한 풍경에 깜짝 놀랐다. 막내딸이 자주 드나들며 뭔가를 숨겨두던 서랍 속에서 아이스크림이 녹아서 흘러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놀랍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한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네 번째 아이라는 위치. 자신의 것을 당당히 주장하기 어려운 어린 마음. 아이는 물건의 종류에 상관없이 자신의 몫을 지키기 위해 나름의 '서바이벌' 전략을 세웠던 거다. 유난히 먹는 속도가 느렸던 딸은 음식이 나오면 자신의 몫을 미리 나누어 어딘가에 숨겨두는 게 습관이 되었다.
나의 어린 시절인 1970년대에도 없던 마인드였다. 조금 더 자란 후에는 한동안 자신의 먹을 것에 이름표를 붙여 냉장고에 보관했던 기억이 있다.
"젓가락이 저절로 닭다리에 꽂혔어"
대가족이었음에도 외식과 배달음식을 좋아하지 않던 남편은 치킨을 주문할 때도 한 마리만 시켰다. 돈을 아끼려던 건 아니었지만, 그 습관이 지금까지 이어져 성인이 된 지금도 우리 가족은 치킨 한 마리 이상 주문해 본 적이 거의 없다.
치킨 한 마리에는 닭다리가 두 개뿐이라는 걸 모두가 알고 있었다. 아빠 눈치를 살피며 아이들은 조심스레 젓가락을 들었다. 그런데 유독 막내아들은 닭다리를 차지하는 확률이 높았다.
"넌 어떻게 또 닭다리만 먹니?"
"젓가락이 저절로 닭다리에 꽂혔어."
막내의 애교 어린 대답이었지만, 사실 그 아이는 이미 마음속으로 목표를 정하고 있었던 거다. 자신의 입장을 합리화하는 나름의 논리를 펼치는 기회가 많았다.
경쟁 속에서 기른 특별한 능력
자신의 의견이 합당함을 증명해야 하는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에게는 예상치 못한 능력이 생겼다. 학교에서 팀 프로젝트를 하거나 회사에서 발표할 때 특별한 평가를 받는다고 한다.
둘째 딸이 디자인을 전공해 작품 발표 기회가 많았는데, 한 교수님이 이런 말을 했단다.
"작품은 개떡인데 작품 해석은 찰떡이야."
지금 그 아이는 그 능력을 인정받아 회사 마케팅 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각자의 자리에서 꽃 피운 아이들
캐나다로 유학 갔던 큰딸과 둘째 딸은 그 경험을 바탕으로 각각 자신만의 길을 걷고 있다. 밴쿠버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고 있는 셋째 아들, 간호사의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넷째 딸, 그리고 해병대에서 자신을 단련하고 있는 막내아들.
어쩔 수 없이 아이들에게 많은 선택권을 줄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내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엄마의 간섭 없이 스스로 삶을 책임지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이 어릴 때부터 자리 잡은 것 같다.
저출산 시대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
경험해 보니 다둥이 가정의 나쁜 점보다 좋은 점이 훨씬 많다. 어려움도 있었고 아이들이 감당해야 했던 아픔도 있었지만, 그보다 큰 것들을 얻었다.
경쟁을 통해 기른 생존력, 양보와 배려를 통해 익힌 사회성, 각자도생 하며 기른 독립심. 이 모든 것들이 지금 아이들 각자의 자리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다고 하는데, 다자녀 가정의 기쁨을 더 많이 알려야 하지 않을까. 실제로 겪어본 사람으로서 말하고 싶다. 힘들지만 그보다 큰 행복이 기다리고 있다고.
*빙수 한 그릇에 일곱 개의 숟가락이 꽂혀 있던 그 여름날. 그때는 몰랐지만 그것이 우리 가족만의 특별한 행복이었다는 걸, 이제야 안다.*
*앞으로도 이런 소소한 기억들을 하나씩 꺼내어 들여다보는 시간이 기대된다. 그 안에서 놓쳤던 행복의 조각들을 더 많이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