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또 나야

훈련 2단계 부모 되기

by 한정희


긴 연휴였다.

친구의 초대로 용평으로 향했다. 스키광인 친구의 동생이 마련한 아파트에서 24시간을 함께했다. 커피 향과 웃음이 어우러진 시간, 오랜만의 여유였다.


친절한 친구 남편이 운전대를 잡고 용평 스키장 근처를 돌며 경포대 가는 길의 ‘보헤미안 커피숍’에 들렀다. 진한 커피 한 모금에 피로가 녹았다. 강릉시장을 구경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유난히 통통하고 싱싱한 도미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이거 회 떠주세요.”

순간 머릿속에 장면이 그려졌다.

집에 도착해 아이들과 둘러앉아 “와, 대박!” 하며 회를 먹는 풍경.

함께 웃고, 여행 이야기를 나누는 따뜻한 저녁 식탁.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잠시 쉬었다가 집으로 향하려 했다.

하지만 남편의 마음은 이미 집에 가 있었다.


“빨리 가서 애들한테 보여줘야지.”

피곤한 얼굴에도 들뜬 빛이 감돌았다. 친구는 갓 지은 밥과 반찬까지 챙겨주며 배웅해 주었다. 마침 추석 연휴가 끝나 교통도 한산했다.


그런데 문제는 남편의 피곤함이었다.

하루 종일 관광한 탓에 졸음이 쏟아졌다.

위험한 운전이 걱정돼 조심스레 말했다.


“잠깐만 쉬었다 가요.”

하지만 남편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들고 차에 올랐다.

아이들에게 회를 먹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졸음과 싸우는 남편을 보며, 안쓰럽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나도 다르지 않았다.

강릉시장에서 이것저것 사고 싶은 걸 꾹 참으며, 홀로 계신 엄마 생각에 건조 오징어 열 마리를 골랐다.


‘엄마가 좋아하시겠지.’

그 얼굴이 떠올랐다.


남편은 아이들에게, 나는 엄마에게 매여 있었다.

각자의 사랑이었지만, 어쩐지 둘 다 건강하지 못한 사랑처럼 느껴졌다.


커피와 찬송, 짧은 기도로 졸음을 쫓으며 무사히 집에 도착했다.

“얘들아, 회 사 왔어!”

현관문을 열며 남편이 외쳤다.


큰딸과 아들이 고개를 들었지만, 표정이 묘했다.

“어... 저희 벌써 밥 먹었는데요.”

“그래도 회잖아. 도미야.”

“아... 네.”


짧은 대답.

그리고 다시 각자 하던 일로 돌아가는 아이들.


그 순간, 내 안에서 뭔가 무너졌다.

이 회를 위해 우리가 뭘 했는데.

졸음을 참고, 쉬지도 않고 달려왔는데.

친구와의 여유로운 저녁도 포기했는데.


“너희 아빠가 얼마나 힘들게 운전해서 왔는데 그렇게 반응해?”

내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아이들은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저희가 뭘 잘못했어요? 밥 먹었다고 했잖아요.”

“여행은 즐거우셨어요?”


큰딸의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 아이는 회가 아니라,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었구나.


“저희는 그냥 평범하게 저녁 먹고 있었어요.

갑자기 회를 들고 오시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요.”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그린 그림 속의 아이들은 실제 아이들이 아니었다.

‘와, 대박!’ 하며 기뻐하는, 내가 기대한 아이들이었다.


화장실로 피신했다.

그곳은 언제나 생각이 정리되는 공간이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라는 인간은 왜 이렇게 훈련이 필요한 걸까?’


남편 한 사람 이해하는 데 30년이 걸렸다.

그제야 알았다. 사람은 다 다르다는 걸.

이제는 아이들의 차례다.

그들은 남편과도, 나와도 다르다.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

그 말씀을 안다.

하지만 현실에선 내 감정이 먼저였다.

내 수고, 내 기대, 내 중심.

그래서 아이들의 마음은 존중되지 못했다


2단계 훈련은 솔직히 하기 싫다.

내가 부모인데.

순종은 당연한 거 아닌가.

왜 또 내가 훈련해야 하지?

왜 또 나야.


하지만 생각해 본다.

남편과의 1단계 훈련을 거부했다면,

우리는 지금 함께 있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아이들과는...


방 안에서는 남편의 잠꼬대가 들려온다.

나는 여전히 화장실에 앉아 있다.

오늘도, 나의 훈련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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