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손님이 많이 오는 집이다.
굳이 외식을 갔다가도 “이 정도에 이 돈을 낸다고?” 하며, 결국 다시 집 밥으로 돌아오는 식구들 덕분이다.
나는 원래 밥상을 차리는 일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는다.
시간 대비 효율이 높고, 준비 과정이 익숙하다.
그래서인지 손님 초대나 가족 모임도 크게 부담이 없다.
요즘은 ‘기본이 특별함이 되는 시대’라,
잡곡밥에 된장찌개, 김구이, 멸치볶음,
거기에 달걀말이 한 조각이면 충분하다.
특히 된장찌개는 친정엄마의 손맛 덕분에 늘 감탄을 자아낸다.
멸치와 다시마로 국물을 내고, 신 김치를 송송 썰어 두부와 함께 끓인다.
평범한 재료지만 그 안에 정성이 스며 있다.
오늘도 시댁의 고모가 먼 캐나다에서 잠시 들어오셨다.
자연스레 시댁 식구들을 집으로 초대했다.
그리고 분주히 밥을 하다가 문득 생각했다.
‘나는 왜 또 밥을 하는 걸까?’
누구에게 잘 보이려는 것도 아니고,
칭찬을 받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저 ‘밥을 짓는 나의 마음’이 중요했다.
주어진 재료 안에서 최선을 다하고,
그 과정에서 오는 평안이 좋았다.
밥을 하다 보면,
손님이 누구냐보다 그 사람이 즐겁게 먹는 얼굴을 떠올리게 된다.
그 표정을 상상하면 힘든 마음이 녹는다.
결국 밥을 하는 이유는 ‘기쁨을 주기 위해서’였다.
그 사람의 기쁨이 곧 나의 기쁨이 되기 때문이다.
그때 문득 깨닫는다.
“아, 하나님도 그러시겠구나.”
내가 잘해서 사랑하시는 게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사랑이시기 때문에,
그분의 마음이 기쁘시기 때문에
우리와 관계 맺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나는 예전엔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지난번에 제가 착한 일 했잖아요.
그러니까 이번엔 제 소원 좀 들어주세요.”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분의 일하심은 나의 어떠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어떠함에 달려 있다는 것을.
내가 밥을 하는 이유가
초대한 사람이 누구냐가 아니라,
요리를 하는 나의 마음 때문인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나의 자격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 때문에 나를 품으신다.
나는 오랫동안 ‘나의 어떠함’으로 스스로를 평가하며 살았다.
조금 부족하면 미안했고,
조금 잘하면 당당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분의 사랑은 그런 계산 너머에서 흘러온다는 것을.
된장찌개가 보글보글 끓으며 퍼지는 향 속에서
나는 하나님을 배운다.
좋은 재료로, 성심껏, 한 그릇의 밥상을 내어놓는 마음처럼
하나님도 오늘도 그렇게 우리를 위해 사랑을 차리신다.
그분은 나의 어떠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어떠함으로 나를 사랑하신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
오늘의 밥상이 은혜가 된다.
그리고 나이 듦이, 감사로 느껴진다.
조금 덜 완벽해지고 나서야
비로소 사랑의 깊이를 배우게 되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