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가 가끔 내게 말한다.
“할머니는 왜 말을 그렇게 해?”
나의 엄마는 늘 묻는다. 관심이 있는 손자손녀에게
월급은 얼마 받느냐,
결혼은 언제 할 거냐,
돈은 좀 모았느냐,
학생은 몇 명이냐? (교습소하는 손녀에게)
요즘엔 그런 질문을
부모라도 쉽게 못 한다.
물어보는 쪽도, 대답하는 쪽도
서로 불편해질 수 있다는 걸
다들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한때는
엄마의 질문이 참 버거웠다.
특히 매일 아침 걸려오는 전화.
“오늘은 뭐 하니?”
“어디 가니?”
왜 이렇게 매일 똑같은 걸 묻지?
속으로는 자꾸 짜증이 났다.
내가 뭘 하든
그렇게까지 알아야 하나 싶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게 엄마의 굿모닝이구나.’
엄마는 대화를 배운 적이 없는 사람이다.
말을 예쁘게 하는 법도,
상대를 배려하는 화법도
누가 가르쳐 준 적이 없다.
하지만 하나는 늘 분명했다.
자식이 궁금했고,
자식이 걱정되고,
자식이 늘 마음에 있었다는 것.
그걸 알고 난 이후로
엄마의 질문은
더 이상 ‘캐묻는 말’이 아니었다.
그냥
“잘 잤니?”
“오늘도 무사하니?”라는
엄마식 인사로 들리기 시작했다.
그 뒤로 엄마와의 대화는
훨씬 편해졌다.
덜 다치고,
덜 날이 서고,
훨씬 부드러워졌다.
엄마의 말은
우리 방식과 많이 다르다.
서툴고, 투박하고,
가끔은 시대에 뒤처진 질문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은
참 진짜다.
가까이서 느껴지는
자식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도무지 흉내 낼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래서 요즘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엄마를 우리 방식으로 바꾸는 건
어쩌면 너무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대신, 우리가 조금만 더 다르게 이해해 주는 건
생각보다 가능하고,
그게 어쩌면 더 쉬운 사랑일지도 모르겠다고.
나도 그렇게 마음을 바꾼 뒤로
엄마와 덜 부딪히고,
덜 상처받고,
관계가 훨씬 평안해졌다.
혹시 지금도
엄마의 말 한마디에
자꾸 마음이 상하는 사람이 있다면,
한 번만 이렇게 바꿔서 들어보면 어떨까.
“아, 이건 엄마의 굿모닝이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대화는 여전한데
마음은 조금 덜 아프고,
조금 더 따뜻해질지도 모른다.
최근 엄마의 대화 방법 때문에 힘들어하는 올케와 남동생에게 전해주고 싶어서 쓴 글이다. 가까이 지켜보는 딸도 힘들 때가 있는데 며느리 노릇 잘하고 싶은 올케에게 전하고 싶어서 썼는데 위로가 될는지 모르겠다. 이해가 되면 좋겠다는 희망으로 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