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모습이 분별되는 기쁨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는 명령

by 한정희


유난히도,

내 주변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다.


스스로 생각해도 사람을 보는 눈이 참 복된 편이었다. 보석 같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곁에 남았고, 그 인연들이 어느 순간부터는 너무 당연해져 버렸다.


‘아, 이것도 은혜지.’

그렇게 쉽게 정리해 버리기엔,

왜 이런 일들이 유독 일관되게 반복되는지가 문득 궁금해졌다.


사람을 볼 때

이상하리만큼 단점보다 장점이 먼저 크게 들어온다. 상대적으로 말이다.

그래서 웬만한 결핍은 잘 기억하지 못한다.


대신 그 사람이 가진 경향성,

지금 이 사람이 서 있는 방향,

그리고 이 인생이 앞으로 어떤 흐름으로 전개될지에 더 관심이 많다.


어쩌면 디테일보다는 흐름을 보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사람을 만날수록

‘이 인생은 어디로 흘러갈까’

그걸 미리 보는 즐거움이 유난히 크다.


오늘 목사님의 설교는

제1계명,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이었다.


그런데 질문은 이것이었다.

왜 하필 이것이 첫 번째 계명일까.


설교는 이렇게 이어졌다.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사랑하는 과정, 그 깊이 있는 교제의 관계성 안에서

비로소 우리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시적인 시선’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힘,

그 시선이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근본 체력이 된다.


하나님은

나를 조건 없이 있는 그대로 사랑하실 뿐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시는 분이시고,

그 한 사람의 인생을 통해

자신의 계획을 이루시려는 뜻을 품고 계신 분이라는 것.


그 하나님과 실제로 교제해 본 사람만이

타인의 인생을

사랑의 대상으로,

기다림의 대상으로,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는 존재로 바라볼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장 먼저

‘이웃을 사랑하라’가 아니라

주 너의 하나님을 먼저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그 순간,

오랫동안 품고 있던 질문의 답을 얻었다.


내가 만나온 하나님이 바로 그런 분이었고,

내가 들었던 그 음성도 바로 그것이었다.


God loves me,

and accepts me just as I am.

조건도, 성취도, 비교도 없는 그 음성 앞에서

나는 다시 태어났고

그때부터 내 눈도 바뀌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나는 사람들을 볼 때 하나님이 나를 보셨던 그 눈으로 보게 되었다.

후배들의 작품을 듣고 초평 하는 선배였던 내가 이런 말을 할 정도로 나는 비판적인 사람이었다.


부담 없이 만든 작품

부담 있게 들었다고 후배들의 자존심에 손상을 주는 말을 거침없이 했었다.


그러던 나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찾아오신 거다. 그 후로 나는 이렇게 변했다.


Accept just as they are.

그리고

Appreciate just as they are.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 담긴 가능성과 빛을

귀하게 여기는 눈으로 사람을 보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사람을 긍정적으로 보았기에

사업에서는 배신을 겪는 일도 적지 않았다.

자신감을 얻은 강사들이

내가 운영하던 학원에 큰 피해를 준 일도 여러 번 있었다.


그래도 나는

그들 덕분에 그 시절을 먹고살았다고 믿는다.

사업은 망했고, 결국 폐업했지만

그 실패가 나를 다시 공부하게 만들었다.


사람을 믿는 내 성향은

리더로서의 단점이었지만,

동시에 내가 다시 교실로 돌아오게 한 이유이기도 했다.


이제 나는 안다.

내가 사람을 좋게 보고,

삶의 흐름을 믿으며,

앞날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던 이유는

내 성격이 좋아서도,

타고난 낙관 때문도 아니라는 것을.


그것은

하나님이 나를 그렇게 보아주셨기 때문이고,

그 시선이

내 안에서 조용히 옮겨와

사람을 향한 나의 시선이 되었기 때문이다.


다음 달,

나는 다시 교실로 들어간다.

떨리지만, 이번에도 나는

아이의 가능성을 먼저 볼 것이다.


지금도 나는

실수하고,

부족하고,

넘어지는 존재다.


그럼에도

내가 다시 사람을 믿을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다.


나는 오늘도

예수님이 나를 보셨던 그 눈으로

사람을 바라보며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