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딸과의 대화가 이렇게 시작되고 힘이 없고 부모의 지지가 아닌 신앙의 탈을 쓰고 자식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어미가 돼버렸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른다는 딸의 카톡 문장이 마음을 더 아프게 한다.
본인이 선택한 학과라서 애정이 있고 꿈도 많아서 여러 가지 활동을 하면서 대학 생활을 알차게 지내왔는데 4학년 1년의 시간을 생활비가 없어서 휴학을 한다는 딸의 소식은 마음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하소연을 둘째 딸에게 해 봤다.
엄마
어쩔 수 없죠
엄마가 해 줄 수 없는데 마음이 아프다고 해결될 수 없는데 왜 마음 아프게 생각해요 그냥 받아들이면 돼요? 본인이 알아서 하겠죠
냉정하게 들리는 둘째 딸의 말을 듣는 순간 맞다 그러나 부모가 지원하지 못함으로 갖는 안타까움 투성이다
첫째 딸 결혼에도 해 줄 것이 없고
둘째 딸의 홀로 서는 과정에도 도울 것이 없고
셋째 딸과 첫째 둘째 아들의 학업에 보탤 것이 없다
새벽에 아르바이트하러 나가는 막내를 볼 때도 왜 이렇게 나 자신이 무능하게 느껴지고 부모로서 답답한지 모르겠다.
남들은 아이들을 독립적으로 잘 키우고 있다는데 난 키운 것이 없다. 성장을 도울 수 있는 경제적인 근간을 잃고 나와 남편이 사업을 통해서 만들어 놓은 부채구조를 해결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는 사이 아이들은 성인이 되었고 그들의 삶의 유지를 위해 각자의 형편에서 열심히 살고 있다.
마치 1960년대 50~60세대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 시대 사람이지만 부모의 지원과 신뢰로 그다지 큰 어려움 없이 지냈다.
나도 알바를 했고 넉넉함이었지 돈이 부족하지 않았다.
독립생활비도
개인 휴대폰이나 개인 용돈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았던 사회적 환경으로 물질 때문에 생활에 크게 지장 되는 적은 없었는데
2000년대 태어난 우리 아이들은 유난히 힘들어 보인다. 1995년과 1997년생이 2명은 그다지 어렵고 지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 아이들의 결혼시즌이 되니 그 안타까운 느낌이 들긴 하지만 학업을 이어가지 못한다는 말은 듣지 못했었다. 상황만 다를 뿐 맞다 아 그렇다 2026년을 맞은 둘째 딸은 결혼을 결정 못하고 미루고 있는 원인도 경제 사정 때문이다.
학업의 딜레이
결혼의 딜레이 속에서 아이들이 배우고 있는 레슨이 뭘까?
어쩔 수 없다면 받아들인다는 한 문장일까? 부모로서 난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된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변화를 이뤄왔던 것처럼 아이들도 그 레슨을 배우고 있다면 좋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