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의 즐거움을 잊다
등산언니랑 나선 산행길 수다로 힘든 70도 각도의 힘든 언덕을 재미 삼아 다녔다. 최근 눈에 밟히는 도토리 다람쥐의 먹이인 줄 알면서도 윤기와 색깔에 감동되어 한알 두 알 줍기 시작했다. 주머니에 채워지면서 사건이 시작됐다. 이왕 줍기 시작했으니 한번 내가 시험 삼아 도토리묵을 만들어보자 열심히 2~3일 모은 도토리를 믹서에 껍질째 갈아서 채에 거른 후 가라앉은 앙금으로 묵을 만들어서 한 그릇 만들었다. 맛은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었지만 내 손으로 만들었다는 자부심에 남편과 아이들이 먹는 모습을 봐도 재미가 났다. 아이 5명 육아 기간 동안 일체의 집안일을 하지 못한 채 아이들은 성장했고 어쩔 수 없이 방목했었다. 그랬던 내가 심신이 약해지는 올해부터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20년 전에 느끼는 못 느낀 감동을 요즘 느끼고 있다.
이미 성장한 큰 딸아이 직장 앞에 가서 픽업할 때도 있고 군 제대 후 복학한 아들의 아침식사를 위해 아침부터 분주하기도 하고 심지어 시어머니가 만들던 도토리 묵까지 만들어 보는 일도 하고 있다.
어쨌든 이런 여유에서 시작된 도토리 줍기다. 진짜 도토리를 만나기 전에는 상수리를 도토리인 줄 알았다. 그러나 진짜 도토리를 보니 햇살에 반짝이는 그 빛깔이 나로 하여금 멈출 수 없이 계속 줍게 했다.
오늘 산행길에 또 눈에 보이는 도토리를 보고 줍게 된다. 그만 줍고 싶은데도 바람이 불어 후다닥 떨어지는 도토리 때문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주웠다.
그러면서 저절로 풍성한 산행길 대화는 멈췄다. 구름산의 운무가 신비스럽고 황홀한 느낌을 만끽하지 못하고 눈은 땅만 쳐다보고 눈에 뜨인 도토리 한알 줍는 기쁨으로 대체됐다. 맛있는 진짜 묵을 먹이고 싶은 가족사랑일까? 줍는 것 자체가 주는 스릴일까?
쉽게 몰입되는 나의 성향 때문에 가족 특히 자녀와의 대화도 없이 일만 하면서 살았던 지난 30년의 내 모습이 순간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지난 시절의 어리석은 내 모습이 반복되지 않도록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다람쥐 먹잇감인 도토리 그만 주어야겠다.
진행하는 것보다 스탑 하는 지혜를 선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