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멘토
영원한 멘토라는 이름을 나에게 달아준 학생을 나는 7년 전 그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만났다. 학원운영을 20년 이상 하면서 이렇게 막무가내로 자기 이야기만 하는 학생은 처음 만났다. 선생이 가르치고 싶지 않은 말과 행동으로 자신의 무지함을 덮어두고 지난 세월을 살아온 친구였다. 왜 그렇게 해야 하죠? 글씨도 막무가내로 알아보지 못하고 마지못해 온 학원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딴짓을 하면서 보내는 것이 몸에 밴듯한 모습이었다. 그런 아이를 볼 때 처음엔 나도 사람인지라 이쁜 모습의 학생과 비교도 되고 어떨 때는 포기하고 싶고 조용히 시간을 보내면 학원이니까 오지 않겠지 라는 희망을 갖기도 했다. 그러나 수업준비나 과제 없이 그 아이는 학원에 모습을 드러내곤 했었다.
어느 날. 나는 학원의 형태든 공부방 형태든 이 아이의 시간을 낭비해 왔던 그 어떤 곳에서 만들어진 무기력과 무관심에서 벗어나게 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네가 좋아하는 음료가 뭐니?"
그 아이에게 원하는 것을 사주면서 공부라는 것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 아이가 사는 아파트 근처의 카페에 자리 잡고 앉아서 숙제로 할당된 부분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체험시키고 싶었다.
먹고 싶은 망고주스를 주문하고 수학문제집을 펼쳤다. 도저히 숙제는 할 수 없다고 했던 아이였기에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싶었다. 한 시간가량 지났다. 큰 산처럼 느껴졌던 과제가 한 시간 안에 가능하다는 체험을 한 뒤로 그 학생은 엄청나게 달라졌다. 조금씩 조금씩 말과 행동이 달라졌고 수업 시간에도 알아듣는 내용이 점점 많아졌다
초등학교 졸업 후 다른 동네로 이사 갔지만 스승의 날에는 지하철 타고 와서 자신의 용돈을 모아서 준비한 선물을 두고 가곤 했다. 그 아이가 이제 고등학생이 되어서 이렇게 또 문자가 왔다.
나는 경험만 줬을 뿐인데 이런 영원한 멘토라고 불리는 것이 과분할 뿐 말이 나오질 않는다
학원을 경영하는 동안에는 학생들보다 강사 선생님들과의 관계에 최선으로 대했지만 서로의 이해득실로 인해 갈등과 배신과 같은 아픈 경험이 많았다. 그들에게 쏟은 노력과 애정에 비하면 새발의 피라고 할 수 있다. 초등학교 3학년 학생에게 망고주스롤 카페에서 한잔 사주고 1시간을 같이 해 주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는 나를 영원한 멘토라고 송구스럽게 불러준다.
학원을 정리하고 남은 관계를 떠올려봤다. 많은 시간과 정성 그리고 애정을 쏟았던 강사선생님들과 이 초등학생을 비교해 보면 비교불가다
그런데 이제 나에게 영원한 멘토라고 불러주는 사람은 초등학생이 고등학생이 된 이 아이뿐이다.
나는 똑같은 사람이다.
이렇게 불러주는 아이의 눈과 마음이 보배라고 생각한다.
오늘 나에게 유난히 이쁘게 보인다고 하는 교회의 집사님에게 이렇게 말했다.
눈이 보배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