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마와 명마
대학 입학과 동시에 독립과 자유를 선언하며 호기롭게 품을 떠났던 이란성쌍둥이 남매가 돌아왔다. 경제적 부담이라는 현실의 높은 벽을 실감하며 다시 '부모'라는 둥지 안으로 날아든 아이들 덕분에, 우리 집 식비는 단숨에 300%나 치솟았다.
텅 빈 냉장고를 채우기 위해 마트 채소 코너를 기웃거리다 보면, 늘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정한 모양으로 누워 있는 '캡 씌운 애호박'을 만난다. 사계절 내내 변함없는 모습으로 식탁의 단골 재료가 되어주는 녀석들. 나는 평소 '팔자'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할 때, 늘 이 애호박을 화두로 꺼내곤 한다.
1. 캡 씌운 호박의 운명, '데스티니(Destiny)'
호박의 입장에서 그 투명하고 질긴 비닐 캡은 어떤 의미일까. 꽃이 지고 이제 막 몸집을 불리려 할 때 씌워지는 그 틀은, 사실 숨 막히는 구속이다. 옆으로 뻗고 싶어도, 조금은 삐딱하게 휘어지고 싶어도 비닐 벽은 냉정하게 호박의 살결을 밀어낸다.
우리 인생의 '팔자'도 이와 닮았다. 도덕적 가치관, 사회적 통념, 혹은 경제적 상황이라는 이름의 비닐 캡. 우리는 그 좁은 틀 안에서 숨이 막히는 고통을 견디며 스스로를 구겨 넣는다. 남들에게 번듯해 보이기 위해, 즉 '상품성' 있는 인간이 되어 시장 매대에 오르기 위해 본래의 곡선을 포기하고 직선의 삶을 강요받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말하는 숙명적인 '데스티니'의 얼굴이다.
2. 말띠 해, 세 마리 야생마의 귀환
올해는 마침 나를 포함해 이란성쌍둥이 아들과 딸 모두가 **'말띠'**를 맞이한 해다. 잘 길들여진 '명마(名馬)'보다는 거친 벌판을 달리는 '야생마'의 기질을 닮은 아이들. 창조주가 부여한 저마다의 고유한 개성을 품고 세상이라는 들판으로 나갔던 아이들이, 잠시 현실이라는 비닐 캡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엄마의 주방으로 돌아온 셈이다.
나는 지글거리는 팬 위에서 호박전을 부치며 아이들에게 물었다.
"얘들아, 너희는 이 비닐 캡이 뭐라고 생각하니? 이걸 견뎌야만 매끈한 모양이 되어 사람들에게 픽업(Pick-up)되는 상품이 된단다. 하지만 그 안에서 호박은 얼마나 죽을 것 같은 고통을 견뎠겠니?"
3. 명마가 될 것인가, 진한 맛을 내는 야생마가 될 것인가
우리는 주방에 둘러앉아 '캡'에 대해 이야기했다. 명마가 되기 위해 고삐를 매고 정해진 트랙을 달려야 하는 삶과, 이름 없는 조선호박처럼 뒤틀려도 제멋대로 들판을 달리는 야생마 같은 삶.
세상이 요구하는 규격에 나를 맞추는 것은 안전한 길이다. 하지만 그 비닐 캡이 호박 본연의 맛까지 지켜주지는 않는다. 진짜 깊은 맛은 뙤약볕 아래 제멋대로 자라 울퉁불퉁해진 조선호박에서 우러나온다. 창조주가 만든 고유한 특성을 맘껏 발휘하며 자란 존재들만이 품을 수 있는 생명력이다.
"엄마, 비닐 캡을 벗긴 호박이 훨씬 부드럽고 맛있어 보여요."
아이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비닐 캡은 잠시 우리를 보호하고 모양을 잡아줄지는 몰라도, 결국 우리가 도달해야 할 곳은 그 껍데기를 찢고 나와 '나만의 진한 맛'을 완성하는 일이다.
4. 본성으로의 회귀, 진짜 팔자를 고치는 법
팔자를 고친다는 것은 더 화려한 비닐 캡을 쓰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나를 억누르던 그 투명한 속박을 찢어버리고, 창조주가 설계한 원래의 나(Nature)로 되돌아가는 용기다.
오늘 우리 세 마리 말띠 식구가 함께 먹는 호박전은 비닐 캡을 벗어던진 결과물이다. 비바람에 상처 입고 뒤틀려도 괜찮다. 하나님이 내 영혼에 새겨놓은 그 구불구불한 길을 기꺼이 사랑할 때, 우리는 상품이 아닌 '작품'이 된다.
식비 300%의 무게보다 더 묵직한 것은, 아이들이 이 주방에서 다시금 자신의 야성을 회복하고 나가는 일일 것이다. 비닐을 벗어던진 자리, 비로소 진짜 우리들의 팔자가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