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시민권

by 한정희

딸이 결혼한 사람은 한국계 1.5세대 미국인이다. 지금은 주한 미군으로 근무하고 있다.

최근 두 사람이 법적인 혼인신고를 마쳤다. 그리고 딸은 환한 얼굴로 말했다.

“이제 나는 미군 부대 어디든 자유롭게 다닐 수 있어.”

그 말이 딸에게는 꽤 큰 기쁨처럼 보였다. 마치 이전에는 닿을 수 없던 세계의 문이 열리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그 기분이 어떤 것인지 조금은 안다. 대학생 시절, 영어회화를 배우려고 미군 용산기지 안에 있는 선생님을 만나러 다닌 적이 있었다. 그곳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절차가 꽤 복잡했고, 허락 없이는 쉽게 드나들 수 없는 공간이라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 딸의 기쁨이 낯설지 않았다.

‘그래, 그럴 수 있지.’

나는 충분히 공감해 줄 수 있었다.

그런데 그날 밤 잠을 자고, 새벽녘 몸을 뒤척이다가 문득 마음에 스며드는 생각이 있었다.

마치 주님께서 조용히 내게 물으시는 것 같았다.

“너는 내가 준 특권을 얼마나 크게 여기고 있느냐?”

지옥을 멸하시고,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주님.

그분이 내게 주신 구원의 특권은, 사실 미국 시민권보다도 훨씬 크고 놀라운 것인데

나는 그것을 정말 그렇게 느끼며 살고 있는가.


이 땅에서는 초콜릿 하나, 맛있는 과자 하나, 눈에 보이는 편리함 하나에도 쉽게 기뻐하면서

정작 하늘로부터 오는 것들,

세상이 알 수도 없고 줄 수도 없는 것들,

주님 안에서 주어지는 기쁨과 평강,

하늘의 보화와 신분의 영광은

어느새 내 삶에서 희미해져 버린 것은 아닐까.


분명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고.

그런데도 왜 내 마음에는 오늘의 괴로움이 쉬지 않고,

내일의 염려가 끊이지 않는 것일까.

나는 이미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인데

왜 땅의 현실 앞에서는 늘 무권리자처럼 움츠러드는가.

나는 이미 하나님 나라의 자녀인데

왜 세상의 작은 허락과 작은 편의에는 그렇게 크게 기뻐하면서

정작 영원한 나라의 소속감은 자주 잊어버리는가.

생각해 보니, 내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무엇이 아니라

이미 받은 것을 다시 회복하는 일이었다.

마치 여권이 만료되어 다시 발급받듯이,

내 마음도 하늘의 시민권을 다시 꺼내 확인해야 했다.

사라진 것이 아니라, 내가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오늘 아침은 그렇게 시작해 보려 한다.


구원의 기쁨을 다시 꺼내 들고,

감사라는 이름으로 다시 하루의 문을 열어 보려 한다.

미국 시민권이 주는 편리함도 분명 기쁜 일이다.

그러나 내게는 그것보다 더 크고 영원한 특권이 있다.

하늘의 시민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허락된 신분.

누구도 빼앗을 수 없고, 세월도 만료시킬 수 없는 은혜의 자격.

오늘도 나는 그 시민권자로 살아가고 싶다.

눈에 보이는 것들에만 반응하며 사는 사람이 아니라

보이지 않지만 가장 확실한 약속 위에 서 있는 사람으로.

아침마다 다시 확인해야겠다.

나는 이 땅에만 속한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