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의 마당 이야기

아파트 문을 닫고 마당의 문을 열다

by 한정희


## 아파트에서의 짧은 기억


첫째와 둘째 아이, 그리고 쌍둥이 남매를 데리고 목동 아파트로 이사했던 때가 있었다. '자녀 양육하기 좋은 환경'이라는 말에 이끌려 선택한 곳이었다. 유해한 요소가 없는 깔끔한 동네. 하지만 내 생각만큼 우리 아이들에게 적합한 곳이 아님을 한 달이 지나자 피부로 직감했다.


20여 년 전이었지만, 그 당시 놀이터에 놀고 있는 아이들은 우리 집 아이들뿐이었다. 또한 일하는 워킹맘은 한 반 45명 학생 중 내가 유일했다. 좋은 곳이지만 나와는 맞지 않는 곳이라는 느낌이 들기까지 한 달도 걸리지 않았다.


## 마당을 찾아 떠나다


이사를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두 가지였다.


우리는 1004호에 살고 있었는데, 904호에 사시는 아저씨가 우리 아이들의 발소리, 즉 층간 소음 때문에 살 수가 없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 무렵, 나는 다섯 번째 아이를 임신했다. 더 이상 그곳에 산다는 건 민폐라고 생각했다.


광명, 안산, 부천, 시흥... 경기도 인근의 단독주택을 찾아 집 순례를 했다. 그리고 마침내 정착한 곳이 마당이 넓은 집이었다. 그곳에서 지금까지 20년 이상을 살고 있다.


## 마당이 선물한 자유


이 마당 있는 집에서는 삶의 제한이 없었다.


노래를 마음껏 부를 수 있고, 피아노를 칠 수 있다. 설거지, 빨래, 청소를 필요한 때에 할 수 있다. 내 필요를 채우는 데 고민하지 않을 수 있었다.


TV가 없고 마트가 가깝지 않아서 아이들은 할 수 없이 책을 가까이할 수밖에 없었다. 심심해서 책 이외에 갖고 놀 것이 없었던 탓일까. 악기를 좋아하는 남편이 시시로 연습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손님 초대를 해도 북적거림이 없다. 이곳저곳에 사람들이 나눠서 있을 수 있어 답답하지 않았다.


## 자연과 함께한 시간들


계절을 느끼고 농부의 마음을 알게 돼서 자연의 이치와 순리를 몸으로 체득하게 되었다. 공짜, 즉 거저 받는 것들—날씨, 공기에 대한 감사를 하게 된다. 자연이 주는 것은 엄청난 혜택인데, 그것들은 거의 공짜다. '공짜가 무섭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과 굳이 놀아주지 않아도 스스로 노는 법을 알게 되었다. 양육이 그다지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5남매를 낳았는지 모르겠다. 아니, 5남매 때문에 이사를 결심했던 것이다.


사계절의 변화로 인해 도배를 굳이 하지 않아도 지루함을 느끼지 않는다. 아파트에 살 때는 2년을 채우기 힘들어서 이사를 다녔지만, 이곳에서는 매일매일이 감사함의 연속이었다.


## 새로운 시작, 뭉게뭉게 구름산 빌리지


북적거림도 이제는 추억이 되었다. 아이들이 학교 근처로, 회사 근처로 독립해 나가고 남편과 나만 있는 집이 되었다.


아름답고 편안함을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특별한 자본을 투자하지 않아도 되는 '마당 공유 사업'을 시작했다. 마당의 기쁨을 지금은 반려견주와 반려견이 누리고 있다. 시간당 받는 요금으로 젊은이들, 그리고 반려견을 사랑하는 모임을 하는 장소로 인기 있는 곳이 되었다.


남편은 사람을 좋아하고 자신의 것을 나누고 싶어 한다. 그래서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고 하고 자신이 제일 행복하다고 이야기한다. 마당이 아이들을 행복하게 하고, 또 다른 사람들을 힐링하는 장소로 쓰이고, 그래서 지금의 '뭉게뭉게 구름산 빌리지'가 탄생되었다.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이야기보따리가 나올지 기대된다. 우리 가족에게 마당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20년의 추억과 행복을 담아낸 또 하나의 가족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