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우주의 글쓰기
가끔 전혀 맥락 없이 어릴 때 배운 내용들이 불쑥 머릿속에 재생될 때가 있다. 하루는 화학 시간 배운 ‘이온화된 원자’가 떠올랐고, 나와 비슷하다고 느꼈다. 나를 설명하기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들뜨고 불안정하여 완전함에 목메는 모습에 동질감을 느꼈다. 생각도 행동도 말도 불안정하게 진동했다. 대화를 할 때 편하고 안정되어 있는 친구들이 신기했다. 나는 매우 신난 것처럼 이야기하는 습관이 있었는데, 사실 하나도 신나지 않았다. 잘 웃었는데, 사실 엄청 웃기지도 않았다. 내가 생각해도 말의 앞뒤도 잘 맞지 않고 신중하지 못한 언어들로 누군가에게 경솔할 때도 있었다. 나는 내가 싫었다.
글쓰기를 하며 분절된 생각의 실타래를 이어 길게 늘여 트리기 시작했다. 한 번도 시도한 적 없는 것이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들은 많았지만 정리해본 적은 없었다. 글쓰기로 인해 신중하고 차분해지는 건 당연했다. 글을 쓸 때는 플러스 이온이 된 내게 마이너스를 띤 입자들이 와서 분자를 완성시키는 것 같았다. 타자를 두드리며 생각을 글로 적으면 전자들이 나를 관통하며 전류가 흐르는 것 같이 짜릿했다.
더군다나 기록을 하고 보니, 일상에서 작게 간질이는 것들이 행복하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글로 잡아두는 순간들은 놀랍게 아름답고 기쁘고 황홀하기도 했다. 내가 쓴 우리 가족과 관련된 글을 엄마 앞에서 읽어주기도 했는데, 어떤 문장은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무언가가 있어서 엄마와 서로의 팔을 잡고 펑펑 울었다. 글은 그렇게 억압되고 내재된 그 무언가를 강력한 에너지로 방출시켜주기도 했다. 내 주변에 있는 것들을 소중하게 만들어주는 글의 놀라움을 알았고, 나는 그렇게 계속 글을 써 내려가고 싶게 되었다.
태양에서 날아온 전기를 띤 입자들이 이온화된 기체 분자와 충돌하면 오로라가 된다고 어디서 읽은 것 같다. 글쓰기를 만난 것은 나에게 그런 신비로운 일이었다. 한 편으로는 이온화된 시절이 있기에 글로 아름다운 것들을 만들어 갈 수 있구나 생각이 된다. 과거의 못난 모습도 끌어안을 수 있는 것, 우연히 하게 된 오로라를 만들어내는 운명 같은 경험이 내게는 글쓰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