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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가다 뛰는 도련님 Sep 28. 2022

#2 내 꿈은 세상 구하는 히어로이다

세상 구하겠다는 내 꿈은 몇 점인가

청년실업이 큰 문제라 말하지만 노가다 일자리 구하는 건 너무나도 간단했다. 구직사이트 몇 번 돌아보니 방송국에서 무대제작을 위한 구조물팀 정직원을 구한다는 채용글이 눈에 띄었다. 인터넷에 어떤 일인지 검색을 해보았더니 하는 일이 너무 고되어 하는 사람이 없는 일이라 한다. 너무 마음에 든다. 당장 지원한다. 역시나, 곧바로 면접 날짜가 잡혔다.



노가다 면접은 어떤 면접일까?



환경미화원을 뽑는 시험 과목으로 무거운 쌀 포대를 지고 운동장을 왕복하는 뉴스를 접한 적이 있다. 내가 하게 될 방송국 노가다도 체력이 중요할 테니 비슷한 시험을 보는 건 아닐까? 다행히도 체력이라면 자신있다. 군 입대 시험 때 활주로 끝에서 끝까지 뛰어야 하는 오래달리기를 했을때 4등을 할 정도로 나는 강하다. 나보다 잘 뛴 그 3명은 분명 인간이 아니다.



난 무조건 합격이다.



그러던 와중, 엄마가 과거 방송국 쪽 일을 해보셨다는 지인분을 집으로 초대했다. 미국 유학까지 다녀온 아들이 노가다를 하겠다니 적잖이 놀란 모양이셨다. 헌데 그 지인 분은 굳이 날 설득할 필요가 없다는 듯한 뉘앙스였다. 평생을 팔자 좋은 도련님으로 살아온 내가 감내할 수 없을 테니 진짜로 하지 않을 테고, 하더라도 금방 그만 둘 테니 걱정 말라는 식의 설득이 이어졌다. 맞는 말이다. 나는 세상 물정 모르는, 고생 한번 안 해본, 돈 걱정 한번 안 해본 도련님이다. 다만, 해볼 테면 해보라는 식의 그 반응은 날 더욱 불타게만 만들 뿐이었다.



미친개는 건드는 게 아니다.



면접 날이 찾아왔다. 서둘러 면접 장소인 방송국 근처에 있는 미용실을 찾아갔다. 장발인 내 머리를 잘라야 했기 때문이다. 보통 노가다는 순둥순둥 하게 생겨 말 잘 들을 거 같은 사람을 뽑는다는 게 나의 편견인데 거울 속의 나는 도무지 고분고분 말을 잘 들을 놈으론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냥 갔다가는 면접관이 날 보고 오금을 지릴지 모를 일이다. 



장발인 머리라도 자르면 좀 나아질거다.



또, 머리가 길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불현듯 들었다. 긴 머리카락이 기계장치에 걸려 얼굴 가죽이 벗겨졌다는 자이로드롭 괴담이 그때 왜 생각났는지는 모르겠지만 노가다 도중 어떤 식으로든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니 장발인 머리는 반드시 잘라야했다. 그런 내 마음도 모르고 미용실 누나는 정말로 자를 거냐고 자꾸만 묻는다. 사실 그대로 방송국 면접 때문에 자른다고 말하니 PD냐고 묻는다.



덕분에 서비스 잔뜩 받았다.



면접 시간이 다가오자 긴장되기 시작한다. 면접관은 어떤 사람일까? 일이 노가다인 만큼 덩치는 자이언트만 한 조폭이 오는 건 아닐지 걱정이다. 아, 물론 쫄지는 않았다. 이건 그냥 단순하고 평범한 면접 전 떨림이다. 단지, 그 두근거림이 조금 심했는지 면접 장소인 카페 안에 앉아 있지 못하고 두 손 공손히 모은 후 카페 앞에 서있었을 뿐이다.



분명히 말하는데 쫄지는 않았다.



면접 시간이 조금 넘자 면접관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온다. 핸드폰을 꺼내는 순간, 도로 건너편에서 핸드폰을 들고 있는 중년 남자와 눈이 마주친다흰색 가디건 차림에 구두를 신은 말끔한 차림의 중년남성이다. 핸드폰을 들고 있는 서로의 모습으로 본능적으로 찾고 있는 대상임을 인지한다. 그리고 그가 무단횡단을 하며 내게 다가온다. 



"xxx 씨 맞으시죠?"



생각했던 조폭 자이언트는 어디 가고 빵셔틀 좀 해봤을 법한 키 160짜리 호빗이 내 앞에 서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은 철근 옮기고 쌓는 전형적인 노가다이다. 당연히 함께 일할 사람을 상상했을 때 어마어마한 덩치의 조폭을 떠올렸다. 그중에서도 면접관이라 하면 행동대장급은 될 테니 마동석 정도의 덩치를 상상했었는데 이건 도대체 무슨 상황인거지?



공손히 앞으로 모았던 두 손을 놓는다.



면접 내용도 내 예상과 달랐다. 보통 1분 자기소개 후에 면접관이 질문을 하면 내가 답을 하는 건데 면접관은 질문 대신 시종일관 이 일이 어떤 일인지 설명을 한다. 한 번 말했으면 두 번 말할 필요는 없는데 굳이 같은 설명을 되풀이한다. 내가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는지 핸드폰에 저장된 작업 사진까지 보여주며 이 일이 어떤 일인지 다시금 설명한다. 아마 대학 졸업에 미국 유학까지 갔다 왔다는 내가 이곳에서 면접을 보는 이유가 잘못 알고 지원한 줄 아는 모양이다. 똑같은 말 계속 듣고 있는 게 여간 지루한 게 아니다. 결국, 한 마디 뱉는다.



"어떤 일인지 알고 왔습니다. 생각 없이 일하고 싶습니다."



면접은 그 순간 끝이 났다. 면접관은 연락 주겠다는 말만 남기고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마지막에 내가 한 말이 건방지게 들렸나? 마지막까지 참고 듣기만 해야 했나? 나는 이런 놈이다. 답답함을 보면 참을 수가 없다. 가만히 입 닫고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가는 걸 굳이 한 마디 얹으면서 자폭을 해버린다. 보통 면접장에서 면접인의 올바른 태도는 '제발 저를 뽑아 주세요.'겠지만 나라는 놈은 '네가 감히 나를 평가해?' 이런 놈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선 자신감 있는 놈이라며 사장님이 뒤에서 흐뭇한 미소를 보이지만 현실에선 위험한 놈으로 찍힐 뿐이다.



선천적으로 반골 기질이 있기에 어쩔 수가 없다.



아무래도 불합격이 될 거 같기에 다른 일을 알아봐야 하나 고민도 잠시, 그날 밤 전화가 오더니 곧바로 출근 날짜가 잡혔다. 나는 합격했다. 청년실업 100만 시대에 졸업장이 나오기도 전에 취업을 해버렸다. 학교 선생님은 나의 합격 소식을 두고 축하를 해줘야 할지 모르겠다 하신다. 나도 두렵다. 과연 사람들은 세상 구하겠다는 내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계란으로 바위조차 부수지 못하는 현실에서 세상을 부수겠다는 내 모습에 사람들은 재미있다고 해줄지 멍청하다고 할지? 지금 이 글을 보고 있을 당신은 어느 쪽인가?



내 꿈은 세상 구하는 히어로다.


내 꿈은 세상 구하는 히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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