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작가가 되겠다고 떠들고 다녔지만 글을 쓴다는 건 나 같은 조무래기가 함부로 말해선 안 되는 영역이었다. 글쓰기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특별한 힘이 필요한 일이다. 그렇기에 작가들은 많은 독서를 한다던가 다른 이들과의 대화를 즐긴다. 하지만 나는 책을 많이 읽지 않았다. 다른 사람과의 대화보다도 혼자 사색하는 걸 더 좋아한다. 무엇보다 나는 제대로 글을 써본 적도 없다. 그래도 글을 쓰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세상 구하겠다는 미친놈이다.
아무도 내게 세상 구하라 한 적은 없다. 나는 평범하다. 게임이나 영화 속 주인공처럼 하늘을 날지도, 불을 뿜지도 못한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세상 어떤 일이 일어나도 외면해도 되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 감히 어느 누구도 내게 손가락질 못한다. 평범한 자에게는 평범한 삶이 어울리듯 굳이 유별난 삶을 살 이유는 없다. 나는 보장된 삶, 편안한 삶, 안정된 삶을 살아왔던 도련님으로 앞으로 남은 나의 인생 역시 평온하게 살 수 있다. 그런데도 내가 세상 구하겠다며 나서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냥 내가 그러고 싶다. 다른 이유가 필요한가?
아마 게임을 너무 많이 했나 보다.
나는 게임이 좋다. 그곳에서 나는 언제나 용사이자 영웅으로써 세상을 구했다. 나의 검은 악을 파멸로 인도하는 파멸의 인도자였으며 나의 방패는 진실의 수호자였다. 언제나 정의의 이름으로 싸웠다. 상대가 누구든 게이치 않았다. 어차피 내가 이길테니까! 게임이란 애초에 그렇게 만든다. 누구나 시작할 수 있고 누구나 깰 수 있다는 약속된 미래가 있다.
게임은 내게 꿈과 용기를 심어주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게임에서는 고난과 역경이 닥칠 때마다 이를 타개할 방향이 제시된다. 요정이 나타나 길을 가리켜 준다거나 내 안에 봉인된 마왕이 힘을 빌려주는 식으로 말이다. 게이머는 제시되는 방향만 선택하고 따르기만 하면 세상 구하고 공주님은 덤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런 거 없다. 고난과 역경을 만났을 때 길을 알려줄 요정도 없고 내게 힘을 빌려줄 마왕도 없다.
그냥 처음부터 나 홀로 이 세상에 놓였을 뿐이다.
그때 한 권의 책이 생각났다. Barbara Ehrenreic의 <노동의 배신>이라는 책이다. 최저시급으로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작가가 직접 3년 동안 최저시급으로 번 돈만으로 살아본 이야기이다.당연하고 뻔하게도 최저시급으로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을 리 없다. 이 책의 결말 역시 아무리 성실히 일을 해도 바뀌는 것 하나 없는 노동의 배신이라는 비극이다. 그래서 였을까? 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며 미국 사회에 최저시급 인상이라는 화두를 던진다.
"GO TRY IT"
최저시급으로 가족을 부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네가 직접 해보라는 오바마 전 미 대통령의 연설이다. 이 연설은 수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켜 미국 최저 시급 인상 법안을 통과시키는데 일조했다. 나아가서는 지구 반대편한국이라는 나라의 최저시급까지 올려버리는 연쇄작용을 일으켰다. 작가 한 사람이 세상을 바꾼 실제 사례인 것이다. 그러니 내가 한번 이 땅에서 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