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광장이 필요하다

by 뿡빵삥뽕


우리의 도시에는 광장이 없다


광장이 없으니 논의도 토론도 협의도 없다.

합의의 자리가 없으니 양보와 존중을 할 기회조차 사라졌다.



나아가 집회와 시위의 공간도 사라졌다.

시위와 집회는 시민이 민주주의 선거로 선출한 대의(代意)의 권력이 올바른 가치의 기능을 상실했을 때 집행하는 시민의 고유한 권리다.


일명 '집시법'을 통해 시위와 집회의 성량(聲量)은 줄어들게 되었고,

경제난과 취업난, 물질만능주의는 사회비판과 자성의 선봉이던 대학의 지성을 사회의 변두리로 몰아내고 있다.

하루 벌어 하루 먹는다는 개인사업자들과 피로에 찌든 노동자들은 비판과 각성보다는 굴종의 굴레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다.


대선 댓글 사건의 책임자로 연루된 전 국방부 장관은 국가기관의 선거개입에 대해 틀린 정보를 바로 알려주려는 것이라는 궤변을 내놓았다.



소수의 권력과 자본에 의해 광장은 폐쇄되었다.

모든 광장의 목소리는 잠식당했다.




혹자는 지상 광장의 기능이 대거 인터넷 공간으로 이전되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일방적인 정보전달과 상대를 쉽게 거절할 수 있는 편일 공간은 대화보다는 통보의 공간이다. 또한 소통을 위해 지불해야 하는 웹상의 시각적 정보 과잉은 또 다른 권력과 자본의 지배 공간이다.


고대 로마와 그리스의 광장은 의견교환과 옳은 것과 아닌 것을 걸러내는 대화의 장이었다.


한 공동체라는 확연한 인식과 인정이 있었기에 그들은 광장에 모여들어 토의하는 과정과 결과를 공유했다.

그런데 우리의 오늘은 과연 어떠한가.



우리는 지나치게 마주 보고 있다. 언제든 등을 돌리고 외면할 수 있는, 그리고 운동력이 떨어지는 인터넷 공간에서 가면을 쓰고 저열한 표현으로 마주 보고 있다.



좁혀지지 않는 평행선에 앉아있다. 우리가 앉아야 할 자리는 광장이라는 공간의 원탁이어야 한다.

인터넷이 아닌 광장이 필요하다.


인터넷의 효율이라는 기능은 반박보다는 응축된 비난을, 존중보다는 무시를 극대화하고 있다.



모니터에 한 줄로 그려진 글자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낯을 바라보는 광장이 필요하다.


지성이 발현될 수 있는 공간.

삶의 현장에 발을 디딘 사람들이 주체가 되어 나와 같은 존재로서의 복합적이고 종합적인 인간을 마주하는 것.


그 공간은 컨테이너 박스나 경찰 버스로, 그리고 쇠파이프로도 막을 수 없는 진실과 성실의 공간이어야 한다.




광장은 시간은 길다


북한의 지뢰도발도 장고의 탁상논쟁을 통해 (물론 결과가 정부 홍보에 비해 미미했지만) 문제의 일단락을 찾았다. 그렇게도 싫어하는 북한과의 장고는 허용하지만 국가권력의 본산인 국민들과 광장에서 만나는 것을 두려워 해서는 안된다.


광장의 시간은 언제나 길었다.


자신의 옳음을 인식시키고 자신의 틀림을 인정하는것은 스피드 게임이 될 수 없다.

진의를 파헤치고 진짜를 마주하는 데는 긴 시간동안 마주보기도, 옆에서 보기도 하는 원탁에서의 인내를 견디는 용기가 필요하다.




독재



독재와 아집의 시대는 언제나 광장의 소리를 싫어했다.

독재와 아집의 권력은 광장을 오용하는 소수를 과장하여 광장 자체를 파괴한다.

하지만 올바른 시민사회는 오용된 광장을 자정 시킬 능력이 있다.


독재자를 몰아내고 민주화를 이루었으며 경제는 눈부시게 성장했다.

한국사회는 광장의 순기능을 활용할 수 있는 지적, 경제적 수준을 이룬 지 오래다.

진영논리에 따른 독단적 단정의 매몰에서 벗어날 만한 지성을 갖고 오래걸리더라도 논의해야 한다.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


분노와 진영-이념 논리, 아집이 담긴 감정의 매몰에서 벗어나 그 시간이 길어지더라도 광장의 자리를 복구해야 한다. 광장을 회피해선 안된다. 광장을 되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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