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아프게 하면서까지 사람들을 배려하기에는
아무도 상처를 감싸주지 않는 시대가 되고야 말았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며, 청춘이니까 아프다며 그건 당연한 거라고 말하는 시대다.
청춘들이 아니라고 소리쳐봤자 들어주지 않는다.
문제는 더 진화되지 못한 우리에게 있다며 자체 해부(解剖)를 요구한다.
왜 못했는지 안됐는지 상처를 헤집어보라고 말한다.
여자친구든, 어른이든, 사회든 알 수 없는 질문을 한다.
답이 무엇인지 도대체 모를 질문들.
답을 찾지 못하는 건, 우리가 어리석어서가 아니라 애초에 답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상처는 자해(自害)해서 난 것이 아니다.
오늘 아픈 이 상처의 대부분은 환자 탓을 하고 있다.
왜 다쳤느냐며. 왜 그랬느냐며,
마치 누군가 자해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처방을 잘못하는 건 환자의 잘못이 아니라 의사의 잘못이다.
"넌 안돼. 이것밖에 안돼"
환자에게 장송곡을 틀어주지 말자. 아직 죽진 않았잖아.
- 무한도전 my life 듣다가 뜬금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