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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이 Jan 28. 2016

군대 꿈

부를 땐 '의무' 일 생기면 '각자'




새벽기도를 가시는 어머니 소리에 깼다가 다시 잠이 들었는데, 군대 꿈을 꾸었다.



입대하는 꿈은 아니었지만, 전역한지도 이제 꽤나 지났는데...



실제 기억 속의 무대인 군대도 꿈 속에서는 편집된다. 

아침에 꾼 꿈에서 난 첫 근무지였던 부식검수를 하고 있었다.
근무지에 도착해선 왠 사복입은 '정환'이라는 녀석이 등장했다.
매우 무례한 반응을 보인 그 친구는 사실 군대가 아니라 고등학교 친구였다.

그리고 다섯대 정도 늘어선 트럭을 줄 세워놓고 검수를 시작했다.

그리고 꿈에서 깨어났다.



사실 아침 잠깐 새 꾼 꿈이라 이야기도 짧은지는 모르겠다만, 군대 꿈이 불쾌하거나 가슴 철렁한 감정을 불러일으킨 적은 없다. 장교생활의 또 다른 장점이다. 





100일이라는 훈련기간이 즐거울 수는 없었지만 장교후보생은 4인 1실이라는 꽤나 훌륭한 대접을 받는다. 
123기로 입영했다 갑자기 몸이 안 좋아지는 바람에 차수가 조정되어 124기에 다시 재입영했던 것이 어떤 경험(?)이 되었는지 재입영하는 불길한(?) 꿈은 경험에 없다.



3년간의 근무 기간도 일반병으로 다녀오는 친구들에 비해서는 만족스러웠던 시간이다. 근무하는 부대가 워낙 잡다한 일이 많은 '지원'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탓에 고생하는 병사들을 보면 장교생활은 사실 의무복무로는 행복한 축에 속했다. 전역 전후로 같이 근무했던 동생들이 간혹 보내주는 연락도 고마운 일이다. 내가 의식적으로 사람을 골라 사귀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배울점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동생들은 참 소중하다. 



전역하고 한동안 군생활을 정리해보는 시간을 가졌었다. 좋은 것에도 싫은 것에도 미련이 많은 성격탓이기도 했거니와 좋은 일만 있었던 군생활은 아니었던지라 민간인으로서의 평정심을 찾고자 했었다.

심리상담을 업으로 하는 친한 지인과 상담 아닌 상담도 해보고 다이어리도 다시 헤집었다.

다이어리는 마치 블랙홀같이 세상을 오그라들게 만드는 단어들로 채워져 있었는데 온통 '힘들다'는 암시들이었다. 혹시 나도 모르게 복무하는 동안 사람들에게 '힘들다'는 노동요를 부르고 다녔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랬다면 그건 꽤나 부끄러운 일이다. 



얼마 전에 구청에서 전화가 왔다. OO기동대로 예비군을 옮겨준다는 것이었다. 몇몇 동기들이 그런 비슷한 게 되었다고 단톡방에서 자랑하는 걸 본적이 있다. 경험상 예비군 장교 두세명의 신청서를 받아 택1할텐데 '수기 작성'을 요구했다. 역시... 잔재가 변할리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규정이라는게 귀찮더라도 '개정회의'를 열고 참석하고 정리하면 몇년이고 편하게 지낼 수 있는데 대체로 '불참'하거나 가짜 회의를 하는 척 한다. 바쁘다는 이유가 영 근거없는 건 아니지만 꽤나 안타까운 일이다. 게다가 진짜 '바쁜 특기'들은 회의를 한다. 그렇게 조금이라도 일을 규정을 줄여야 하니까. 


될지 안될지 모르겠다만 [반기 1회씩 30분 거리]를 [연 1회 2박3일 오산]에 비할 수는 없다. 된다면 근 2년간 오산에서 안면을 튼 형님과는 이별이지만 그건 뭐... 괜찮다. 오산은 치킨 한 마리 반 용돈을 주는데 여긴 3마리니까.





군대 이야기를 할 때 소외되는 경우가 종종있다. 동기들을 만날땐 아니 그런데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자리에서 장교를 포함한 간부가 안주거리이기 때문이다. 규정에선 '병사'는 꼭 '간부'와 함께 야근을 해야 하는데 그걸 지킬리가 없다. 책임도 간부에게 있는 것인데 사건이 났을 때 군대가 그럴리가 없다. 




공익 훈련을 들어가는 자식을 둔 집사님 부부가 새벽기도에 열심히 나오고 기도제목을 열심히 돌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공익 훈련도 집 떠나 한달이니 고생이긴 하겠지만 솔직히 '공익'이 '군대'를 다녀왔다 말하면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다. 2년에 가까운 시간을 갇혀서 보내는 시간의 짐을 행정복무가 '척'하는 것은 무임승차처럼 보인다. 

그건 내가 겪어서가 아니라 그걸 힘들게 겪는 청춘들을 가까이서 너무나 많이 봤기 때문이다. 180명... 걔중에는 자신이 병든지 모르고 들어왔다가 치료시기가 너무 늦어 '전역' 밖에 할 수 없던 녀석도 있었고 쥐꼬리 병사 월급모아 집에 보내던 녀석들도 있었다. 





부를 때는 '신성한 의무'인데 일 생기면 '각자도생'이 되는 곳이 군대다. 

'의무'면 나라에서 책임져 줘야 하는데, 일 생기면 갑자기 '자본주의'가 되는 곳이 군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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