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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이 Feb 07. 2016

『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_시마다 소지

133 일본인이 반성하는 일본의 과거를 읽다.


찬호께이의 <13.67>에 '시마다 소지'의 추천평이 실려있다. 
<13.67>의 흥을 그대로 이어가기 위해 일본 사회파 추리문학계의 대부인 시마다 소지의 책을 선택했다.

여러모로 찾아보니 2011년에 나온책인데다 평점이 9점대로 높은 편이다. 마케팅 기간을 지나 몇년동안 이런 높은 점수를 유지하는건 쉽지 않을텐데... 꽤 오래전에 나온 책이라 교보에서 영풍을 오가서야 살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책은 택배 수취보다는 서점에서 '손에 들고' 오는 것을 선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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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걸린 노인 나메카와는 소비세 12엔을 더 내라는 건어물 여주인과의 작은 소동 중 그녀의 몸에 단도를 꽂는다. 소비세 12엔 살인사건으로 유명해지는 이 사건에 뭔가 보이지 않는 그림자를 느끼고 수사를 하는 요시키 형사의 행보가 이 소설의 주된 줄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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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카와 영감의 교도소 시절 소설과 사건간의 비현실이 현실과 조우했을 때 몇몇 곳에선 당혹스럽다. 추리소설은 대개 독자에게 '탐정역'을 제안하는데 이 소설은 쉬어가야 한다. 소설이 전개되는 중간중간 얻게되는 힌트없이는 해답을 얻기 불가능하기 때문이다(게다가 '하늘의 도움'이 필요하다). <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은 퍼즐 전체를 불규칙하게 맞추는 게 아닌, 작은 퍼즐 너댓개를 하나씩 맞춰가며 큰 그림을 맞추는 식이다. 


P488
성과를 휙 던져버리고 그저 노인 앞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지금 요시키 앞에 있는 이 노인은 아득한 옛날, 일본인이 범한 죄의 응보로서 존재하고 있다. 그에 대해 일본인인 자신은 설사 경찰관이라 해도, 아니 경찰관이기 때문에 절대로 고압적인 말을 내뱉을 수 없다.


P514
사할린에는 아직 4만 명 이상의 조선인이 남아 있다.
평소에는 생각한 적도 없었지만 40 몇 년 전의 전쟁과 일본인의 죄가 이 나라에서 아직 처리되지 않고 남아 있다. 전쟁의 죄일 뿐이라고 말해버리면 편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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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다 소지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익숙치 않은 장르인 '본격 사회파' 소설로서 이 글을 썼다고 한다. 사회비판적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이 소설은 일본인이 아직 씻지 못한 '한국인 강제 징용자'에 대한 일본사회에 자성을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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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카와 노인은 12엔 때문에 살인을 범한 미치광이로 소개되는데, 이는 한국인 징용, 위안부 피해자 들에 대한 일본의 시선과도 맞닿아 있다. 일본인의 지난 과오가 불러온 나메카와(동시에 태영)의 일그러진 인생을 일본사회가 12엔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에 요시키는 물론 작가의 분노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일본 제국주의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정부와 전범기업들의 태도가 이와 다르지 않다)


요시키의 입을 빌려 작가는 불가능할 수도 있는 살인 계획이 완벽하게 이루어진 건 '나메카와'의 불행이 너무 안쓰러웠던 하늘이 도와줬기에 가능했다고, 기발한 발상이 하늘을 움직였다고.

P507
"지독한 꼴을 당하게 해서 정말로 죄송합니다."
그리고 유치장 앞에서 깊숙이 머리를 숙였다. 노인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는지 보이지는 않았다. 얼굴을 들고 요시키는 다시 계단을 향해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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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유명 작가마저 과거사에 대한 분명한 자성을 촉구하는데 반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그만하라던 (뭔가 결여된 게 분명해 보이는 사람들이 모인)'엄마부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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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정서를 담뿍 담지 않아도 이 소설은 충분히 재미있다. 거기에 더해 소설의 말미에 자성하는 목소리를 강하게 토해내는 작가의 한 마디 한 마디를 읽으며 떠올랐던 이름도 빛도 없이 사그라진 당시 조선인들과 위안부 피해자분들을 생각하니 눈밑이 뜨거워지기까지 했다. 

이 책에 대한 높은 평점에 작가의 인간미가 분명히 더해져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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