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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이 Feb 15. 2016

『한나 아렌트의 말』_한나 아렌트

141-2016년 14번째 책



철학서, 사회정치서, 기타인문서들을 읽다보면 늘 등장하는 여성의 이름이 있는데 바로 '한나 아렌트, Hannah Arendt(1906~1975)'다. 독일에서 외동딸로 태어나 나치를 피해 프랑스 파리로, 다시 미국 뉴욕으로 이동했다. 하이데거와 야스퍼스같은 세계적인 철학자들과 교류했고 <폭력론> <전체주의의 기원>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폭력의 세기> <혁명론>같은 책과 글을 남겼다. 


한나 아렌트와 그녀의 남편 하인리히 블뢰허, 그녀는 남편의 곁에 묻혔다.

그녀의 책을 읽고자 몇번이나 찾아봤지만, 늘 누군가가 설명하는 아렌트였고 '한나 아렌트' 스스로의 저술은 쉽게 구할 수가 없었다. 두꺼운 학술서는 몇 있었지만 이런 장르에 있어서 초심자에 속하는 나로서는 부담. 그러다 이번에 '마음산책'이라는 출판사에서 그녀의 생전 인터뷰 네개를 모아 '대담집'으로 펴냈다. 대화체인데다가 그렇게 두껍지 않아 고민없이 들고와 읽었는데... 그녀의 책이 왜 우리나라 서가에서 찾기 힘든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호흡이 너무 길다. 정치에 대한 그녀의 주요한 사상이 담긴 문장들은 두세줄에 이른다. 번역가의 실력을 의심케 할 정도로 길고 모호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많아 여러번 재독하고 나서야 그 의미에 가까이 갈 수 있었다. 한글인데도 영어 독해하는 기분이랄까... 난 내가 잠시나마 난독증에 걸린 줄 알았다. 내가 그동안 활자를 너무 가볍게 여긴 탓에 이런 중후하고 긴 호흡의 글을 정면으로 마주하지 못하는 지도 모를 일이다.


1 : 무엇이 남아 있느냐고요? 언어가 남아 있어요 - 1964.10.28 독일 ZDF, 귄터 가우스와 함께
2 : 아이히만은 터무니없이 멍청했어요 - 1963.11.9 독일 SWR, 요아힘 페스트와 함께
3 : 정치와 혁명에 관한 사유 - 하나의 견해 - 1970 여름 아델베르트 라이프와 함께
4 : 마지막 인터뷰 - 1973.10 ORTF(프랑스국영라디오텔레비전) 로제 에레라와 함께





*
이 책은 <로마의 일인자 3권> 후반부와 함께 읽었다. (요즘은 두세권 책을 동시에 읽고 있는데 각기 다른 장르의 책들은 독서의 흥미를 지속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마치 각기 다른 성향의 친구들을 만나는 것처럼) 시대를 통해 정치 양태를 두루 살피는 <로마의 일인자>와 접합해 볼만한 글들이 상당히 많았다. 특히 원로원 귀족들의 계급적 전체주의 행태, 마지막에 등장했던 호민관들의 소요사태는 '생각'과 '행동'이 정치에서 '적시성'에 따라 어떤 역할과 효과를 갖는지를 생각하게 해준다. 


P118 
혁명가는 길거리에 권력이 떨어져 있는 것이 언제인지를 알고, 그걸 집어 들 때가 언제인지를 아는 사람이에요. 무장봉기가 그대로 혁명으로 이어진 적은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어요.



그녀의 평생에 가장 논란이 되었던 글(뉴요커에 실린)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 대한 내용들이 지속적으로 인터뷰에 등장한다. 나치로서의 학살을 부담스러워했지만 가담했던 아이히만이 예루살렘에서 받은 재판에 대한 아렌트의 글인데 여기서 그 유명한 '악의 평범성'이 등장한다. 내가 이해한 바를 활용해 적자면, '나치'라는 거악은 조그만 나쁜마음이라는 조각들이 모여 '거대한 악'이라는 그림이 된 것이다. 아이히만같은 평범한 인간들이 1도씩 올리자 그게 쇠를 녹여버린 것이다. 관료제라는 기계를 통해서 말이다. 

그런 '관료제의 특수성'을 이유로 평범한 악을 행한 사람들을 감면하자는게 아렌트의 의견은 아니다. 두번째 인터뷰에서 그녀는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p118
하지만 그는 살인 절차의 일부였어요! 실제로 누가 이걸 했고 저걸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책들을 이해하고 적는 대개의 독후감과는 달리 이번 글은 두번 읽는 다는 생각으로 이 글을 적고있다. 나로서는 그만큼 단번에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인 동시에 호흡이 길어 난해한(혹시 진짜 번역이 잘못된건 아니겠지??) 그녀의 화법이 그 이유다. 




*
이 책을 읽으며 여러번 곱씹게하고 동의하게 만든 구절들을 옮겨본다.

<1>
P46
어떤 사람이 유대인이라서 공격을 받았다면 그 사람은 유대인으로서 자신을 옹호해야 한다. 독일인으로서가 아니라, 세계시민으로서가 아니라, 인권의 지지자로서가 아니라, 그 외의 그 무엇으로서가 아니라.

P48
히틀러 이전의 유럽이요? 나는 그 시대가 그립지 않다고 단언 할 수 있어요. 무엇이 남아 있느냐고요? 언어(독일어)가 남아 있어요.

P56
나는 평생 그 어떤 사람들이나 집단을 '사랑'한 적이 없습니다. 독일인이건 프랑스인이건 미국인이건 아니면 노동계급이나 그와 비슷한 어떤 것도 말입니다. 나는 내 친구들만 사랑했고, 내가 잘 알고 또 믿는 유일한 종류의 사랑은 개인을 향한 사랑입니다.

p59
유대인들이 세계 곳곳으로 흩어져 고통을 받았던 이 무세계성은, 그리고 집단에 소속된 이들 사이에서 특별한 온기를 창출해낸 이 무세계성은 이스라엘이 건국됐을 때 바뀌었어요.

p63
이건 진정으로 사실적 진리의 문제예요. 견해의 문제가 아니에요. 대학에 존재하는 사과학은 사실적 진리의 수호자들이에요.

p71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지 못해요. 모험이 뜻하는 바가 그거예요. 요즘에 나는 이 모험은 사람들 사이에 신뢰가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고 말하곤 해요. 모든 사람이 가진 인간적인 것에 대한 신뢰 말이에요. 그게 없다면 그런 모험은 행해질 수 없을 거예요.



<2>
p98
자존심을 유지한다는 것은 물론 자신에게 말을 건다는 뜻이에요. 그리고 자신에게 말을 건다는 건 기본적으로 사유를 하는 거예요. 전문적인 사유가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는 사유를 말하는 거예요. 따라서 이런 생각의 뒤편에 있는 추정은 '나는 나 자신과 대화할 수 있다'는 거예요.

p99
이것은 내면적 이민이나 내적인 저항이라는 개념 전체가 소멸했다는 뜻이죠, 내 말은, 그런 건 없다는 거예요. 세상에는 외면적 저항만 있을 뿐이에요. 인간의 내면에는 기껏해야 심리유보만 있어요. 맞죠? 그것들은 허깨비들이 하는 거짓말이에요.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대단히 역겨운 거짓말이에요. 관료제는 대량 학살을 행정적으로 자행했고, 그런 상황은 여느 관료제가 그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익명성의 느낌을 창출해냈어요. 개별적인 인간은 사라졌어요.

p102
아이히만은 사람을 실제로 죽이는 업무를 부여받지는 않았어요. 그는 그런 일에는 적합하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그는 살인 절차의 일부였어요! 실제로 누가 이걸 했고 저걸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3>
p115
역사를 보면 선한 상황은 지속 기간이 대단히 짧은 게 보통이지만 이후로 장시간 실제로 일어나는 사건들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해요.

p118
혁명가는 혁명을 만들어내지 않아요! 혁명가는 길거리에 권력이 떨어져 있는 것이 언제인지를 알고, 그걸 집어 들 때가 언제인지를 아는 사람이에요.

p131
자본주의는 그 자리에 '계급들'을, 본질적으로 착취자와 피착취자라는 두 개의 계급을 투입했어요.

p142
자유라는 용어는 항상 '반대할 자유'를 의미해요.

p144
권력의 쇠퇴는 하나같이 폭력을 동원할 명분을 준다는 사실을 우리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권력을 움켜쥐었지만 그게 자기 손아귀에서 빠져나가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그걸 폭력으로 대체하려는 유혹에 저항하기란 어렵다는 것을 늘 알아왔기 때문이다.


<4>
p165
이 나라(미국)는 민족국가가 아니에요. 미국은 민족국가가 아닌데, 유럽인들은 이 단순한 사실을 이해하는 데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려요. 결국에는 그 사실을 이론적으로는 인식하게 되죠. 그러니까 이 나라를 통합하는 요소는 유산도 아니고 기억도, 국토도, 언어도, 동일한 혈통도 아니에요…… 이 시민들은 딱 한 가지 것으로 통합돼 있어요. 즉, 당신은 헌법에 동의한다는 의사를 표명하는 단순한 절차만 따르면 미합중국 시민이 돼요. 프랑스뿐 아니라 독일의 보편적인 여론에 따르자면 헌법은 그저 종이 쪼가리일 뿐이고 우리는 그걸 바꿀 수도 있어요. 그런데 이 나라에서 헌법은 성스러운 문서로, 건국이라는 성스러운 행위를 항구적으로 기억하게 해주는 기념품이에요.

p169
예를 들어 대통령은 완벽한 권리를 갖고 있어요 ……. 왕은 아무 잘못도 저지를 수 없어요. 즉, 그는 공화국의 군주와 비슷해요. 그는 법 위에 존재하고, 그가 항상 내놓는 해명은, 그가 하는 일이 무엇이건 그는 국가 안보를 위해 그 일을 했다는 거예요.

p179
사유한다는 말은 항상 비판적으로 생각한다는 뜻이고,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것은 늘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는 거예요.

p187
유대교는 종교라기보다는 생활방식에 더 가까워요. 내가 유대식 가르침을 받고 종교적 가르침을 받은 게 기억나요 . 열네 살쯤이었는데, 나는 물론 선생님한테 반항하고 싶었고 선생님한테 뭔가 끔찍한 짓을 하고 싶었어요. 자리에서 일어나 "저는 하느님을 믿지 않아요"하고 말했죠. 그랬더니 선생님이 이러더군요. "누가 너한테 믿으라든?"

p192
그들은 거물 정치범들이 아니라 거대한 정치적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로, 이 둘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음... 확실히 이렇게 옮겨놓으며 한번 더 보니 조금은 뭔가 이해되는 기분이 든다. 그나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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