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열이 Feb 20. 2016

오늘같이 좋은 날

148 : 764원, 달팽이크림, 녹차킷캣




764원, 달팽이크림, 녹차킷캣





난 결혼을 안할테니까 결혼식에 결석하고 시간을 보내려는데, 마침 이제는 여분까지 잃어버린 이어폰의 고무피(이어팁)이 서비스센터에 들어왔다는 문자를 받고 시내로 나갔다. 

지하철과 연결되어 있는 건물 10층에 들어선 대기업의 서비스센터는 주말이지만 열려있었고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한가했다. 물한잔 커피한잔을 마시고 돈과 물건을 주고받고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창 밖 날씨가 참 좋다. 

1층에서 내려 지하에 자리잡은 대형 서점으로 향했다. 연초부터 사모은 책들을 생각해보니 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오늘 아침 속보로 전해진 '움베르트 에코'의 타계 소식이 생각이 나 그의 책 대부분을 출간한 출판사 코너에 들렀다. 역시나 에코의 소설들이 눈에 띄었다. 언제나 사놓고는 읽는데 1년씩 걸렸다. 그의 소설은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당장은 이해하기 어려운 지식이 해일처럼 쏟아지는 그런 책이었다. 지금 내가 학술서를 읽는지 인문서나 철학서를 읽는지... 모를 소설들.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 







습관처럼 이 서점의 어플을 열어봤다. 그런데 이게 왠일? 적립금이 6,000원이 들어있었다. 이 서점의 적립금을 다 쓰고 다른 서점으로 옮긴걸로 기억하는데 거대한(?) 적립금이 보이니 책을 사야겠다 싶었다. 



에코의 소설 코너 옆으로 몇 걸음 더 가니 세계문학전집 코너다. 사람들이 명작이다, 고전이다 워낙 말들을 많이하니 읽지 않았지만 읽은것 마냥 아는체 하는 책들이 꽂혀있다. 적립금이 5,500원이니 적당히 비슷한 책을 그 중에서 골라봤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과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비교했다. 가격은 두권 다 7,000원. 세계문학전집의 장점이다. 신간이나 이 외의 장르에선 이만한 책을 1만원은 족히 줘야한다. 전집 순서가 앞이길래 <동물농장>을 집어들었다. 







'동서문화사'는 우리나라에 해외 추리소설을 대량으로 소개한 출판사다(그래서 초창기 해적판도 많고 오역도 많은 출판사다). 그동안 읽고 싶었지만 도서관이든 서점(+중고서점)이든 구할 길 없던 <진리는 시간의 딸>이 들어와 있었다. 




'아 책도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최근 여기저기서 <진리는 시간의 딸>을 역대추리소설의 넘버에 포함시킨 목록을 꽤 여럿 봤다. 가격은 6,800원. 고민을 좀 하다가 지금 집에서 읽고있는 책이 추리소설이라 다음 기회에 구하기로 했다.



그렇게 7,000원 <동물농장>을 적립금과 할인을 받아 결제하니 764원

책값 많큼 가벼운 마음으로 아까 봤던 좋은 날씨의 거리로 올라왔다. 




아... 겨울이 늘 이런 날씨라면 얼마나 좋을까.





볕도 좋고 이 정도면 적당한 겨울 날씨다. 손을 넣어도 되고 안 넣어도 되는 겨울 날씨. 





또 다른 볼 일을 보러 길을 내려가는데 어제 저녁 운전 중에 받은 [컬투쇼] 사연 당첨 선물 문자가 생각났다. 조카가 화장실에서 겪은 '방구사건'인데 2주전 주말에 방송됐었다. 선물은 달팽이크림으로 어머니 면전에 바치오리다만은 공선물이라는 생각에 더 늦기전에 답신을 보냈다. 





문자를 보내고 거리를 둘러보니 지인들이 일본 여행이면 늘 챙겨오는 '녹차 킷캣'이 보인다.










광화문 골목에서 은밀한(???) 시간을 보내고 역사로 내려가니 언제나 거슬리는 광고판이 눈에 띈다.





저 문구는 분명 내가 느끼는 그 '불쾌함'을 떠올리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내 인생은 왜 이따위야?" 가 그 본의미일텐데 오늘은 반대의 의미도 같이 생각났다. 아주 특이한 경우에는 그렇게도 쓰일 수 있지 않을까.


 



소소하고 손톱만한 호사들이 몇차례 맞아주니 송곳같은 문장도 슬쩍 비켜선다. 

대단한 복주머니가 아니더라도 하루하루 여유롭게 좋은 날을 만들 수 있는건데 내가 그동안 너무 야박했나 싶기도 하고... 

대단한 서프라이즈에 맛을 들이면 그 나머지는 아무것도 아닌것처럼 느끼게 되는데, 사실 이거나 저거나 몇주 지나면 생각나지 않는건 마찬가지다. 인생 긴데 유통기한이 몇달씩이나 갈까?




내 인생은 왜 그럴까? 
왜 그런가 하면 굳이 그런 질문을 해대기 때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움베르트 에코, 하퍼 리 별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