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7, 16-59 폴라 호킨스 소설
나(레이첼)는 런던의 통근 기차에서 매일 매일 제스와 제이슨 부부를 본다. 서로 사랑하는 부부. 제스와 제이슨은 나의 상상력을 돋우기 위해 내가 지어준 이름이다. 그들의 원래 이름은 메건과 스콧이다.
전남편인 톰은 '애나'라는 여자와 바람이 났고, 그건 나(레이첼)의 불임과 알콜중독과 폭력성향 때문이었다. 그리고 애나는 톰과 내가 살던 15호에 그대로 살고있고 23호의 아직 자식이 없는 메건이라는 여자가 톰과 애나의 아이인 에비의 보모다.
그러던 어느날 메건이 살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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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 블런트가 주인공인 레이첼 역을 맡아 영화로 나온다기에 읽었다. 작년 인상깊게 본 영화 <시카리오>의 주인공이다.
400쪽이 넘는 긴 책이지만 세 여자(레이첼, 애나, 메건)가 돌아가며 화자로 읊는 날것 그대로의 삶의 불편함이 고스란히 스며들었다.
비정상적인 인간들만 등장한다며 불만을 토해내던 서평이 기억난다...
그렇지만 우리모두 어딘가엔 비정상을 달고 살아내고 있으니까... 우리는 모두 다르니까 괜찮다.
소설 속 인물들처럼 우리의 비정상을 참아내기 위해 술, 여자, 남자, 거짓말, 폭력으로 어디엔가 이 분열을 삭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라고 적었지만 사실 '나'라고 적기 부끄러워서라는 생각이 든다.
소설 속 묘사에 비해 뚱뚱하지 않은 에밀리 블런트. 소설을 읽었지만 영화를 봐야싶다. 그녀는 어떻게 불안을 펼쳐낼까. 궁금하다. 영화화 되는 걸온더트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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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요일 비오던 경주를 오가며 절반을 읽고 어제-오늘 나머지 절반을 읽었다.
그날 내려가는 길엔 KTX, 올라오는 길엔 환승때문에 무궁화호와 새마을호를 탔다.
덜커덩 덜커덩 덜커덩 덜커덩
김종성 선생의 소설 <여명의 눈동자> 보면 1권 첫 페이지에 위안부 소녀들을 태운 기차가 압록강 철교를 지나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덜커덩 덜커덩 덜커덩 덜커덩'이라고 기차의 불안을 담아냈다. (적어도 내 생각에는)
<걸온더트레인>에서의 레이첼이 통근용으로 타는 기차도, 애나와 메건의 집을 지나는 기차도 그런 덜커덩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파국으로 이어지는 소설을 과거로 조금씩 조금씩 거슬러 떠올려보면 그 시작은 사실 작은 균열, 비틀어짐에서 비롯된게 아니었을까?
불안.
지금이 깨질지도 모른다는 불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