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일기 5
추석(에) 김밥
추석 전 날, 그러니까 토요일 늦은 시간, 집에 들어가는 길에 갑자기 김밥이 먹고 싶어졌다.
그것도 그냥 김밥이 아니라 '맛있는 김밥'이 먹고 싶어진 것이다.
매콤하게 끓인 라면에 윤기나는 김과 알알이 반짝이는 밥으로 돌돌말린 김밥.
어차피 밤이 늦었으니 '내일'먹어야 하는 김밥인데... 걱정이다.
라면이야 편의점에서도 살 수 있지만 김밥, 그것도 맛있는 김밥은 편의점에서 팔지 않는다. 추석 당일에 문을 연 김밥집이 과연 있을까. 그렇다고 그 유명한 김밥들의 천당에서 파는 김밥은 내키지 않았다.
맛있는 김밥이 필요했다.
추석에, 그것도 당일에 맛있는 김밥을 먹는다는 건
한겨울에 수박을 먹는 것이며
한여름에 생딸기를 먹는 것과 같다.
성지순례 기간이라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맛있는 돼지고기'를 찾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너무 깨끗한 물에선 물고기가 살지 않는다.
풍요로운 추수의 계절에 라면과 김밥이라니,
그런데 명절에 시골집을 가본 사람이라면 한번쯤 떠올렸을 법한 메뉴가 바로 라면이다. 나주가 시골인 우리집은 명절에 기름진 음식을 오직 쌀로만 구성된 탄수화물과 먹는다. 제사음식이라는게 한 오백년전 음식이라 담백하고 고춧가루도 들어가지 않는다. 얼큰하고 완벽한 향미의 라면이 당긴다. 마구 당긴다.
완벽한 음식들은 오히려 미각의 불량함을 자극한다. 마치 너무 깨끗한 물에선 물고기가 살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로 말이다.
이때, 라면과 김밥은 환상의 짝꿍이다. 꼬들꼬들한 라면을 국물과 함께 먹은 후, 갖은 채소로 뭉쳐진 김밥을 국물과 함께 먹으면 뜨거운 국물이 식기도 하거니와 라면 국물에 밥을 말아먹는 기쁨도 함께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김과 라면의 궁합 또한 의심할 필요가 없는... 바로 그런 것이다.
혼자 집을 지키던 추석 당일, 교회에서 예배를 마치고 혹시 번화가의 김밥집은 열었을까 광화문, 종로일대를 다녔지만 문을 열어 내 미각을 위로해 줄 김밥집은 없었다. 게다가 참고 참은 이틀이 아까워 아무 김밥이나 먹을 수도 없었다. 라면도 먹지 못했다. 김밥없는 라면을 먹을 수는 없었다.
편의점도, 카페도, 빵집도 문을 열었는데 문을 연 김밥집은 찾지 보이지가 않았다.
'김밥... 김밥.... 맛있는 김밥.'
'김밥... 라면이랑 먹어야되는 김밥.'
나는 내가 임신한 줄 알았다. 뭐... 어머니는 내가 1년 내내 임신 상태라고 화를 내시기는 한다.
그리고 부모님이 돌아오시고 누나의 가족과 추석의 마무리를 정신없이 보내니 김밥은 살짝 잊고 말았다.
세상에!!!
진짜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잠시 숨을 고를 뿐
그렇지만 '진짜'는 '진짜'인 법.
진짜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잠시 숨을 고를 뿐이다.
어제 저녁 한가로이 방을 청소하는데 문득 생각이 났다.
못 먹은 '맛있는 김밥'이......
오늘 나오는 길에 텔레비전 출연으로 유명해진 김밥집 프랜차이즈가 눈에 띄었다. 9월 내내 몰랐던 새로 들어선 김밥집이 오늘에서야 보인 것이다.
'이건 진짜다. 김밥을 향한 내 마음은 진짜다.'
혹시 집에 라면이 떨어졌을지 모르니 지하철 역 편의점에서 라면도 사갈 것이다.
그리고 나무젓가락도 챙겨야 한다.
라면과 김밥은 자고로 나무젓가락으로 먹어야 면도 잘 잡고 김밥도 풀어지지 않는다.
그래야 진짜가 된다.